그림에서 전통을 현대화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막연히 옛 것을 재현하거나 전통회화정신을 표방하는 것만으로는 미진하다.

옛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형상을 무작정 많이 차용한다고 해서 전통에
충실한 그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서양화가 이희중씨는 이같은 문제를 독특한 방법으로 해결해 냈다.

그림의 소재와 이미지는 옛 것에서 빌려왔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구성해
내는 방법은 극도로 현대적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이씨가 7일-1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수목화랑(518-5884)에서 갖는 개인전에
내놓는 작품 30여점에서도 이같은 특징은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는 갓 쓰고 지팡이를 든 선비, 구름, 소나무, 꽃과 나비 등
산수화나 민화에 자주 쓰인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림속의 이미지만으로 판단할 땐 옛 작품과 비슷하다.

그러나 화면을 꼼꼼히 뜯어 보면 그의 작품엔 과거는 물론 현대와 미래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마치 연대기처럼 역사의 긴 흐름을 축약적 구성으로 보여준다.

작품속의 선비는 늘 구부정한 자세로 지팡이를 짚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선비의 주변에는 산과 들, 꽃, 나무, 새 등 평범하지만 소중한
자연이 평면적으로 처리돼 있다.

작가는 이같은 화면구성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태며 그 이상향이 실현되는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이정환 기자 jh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