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부쩍 고객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고가 수입명품시장에서 캘빈클라인
(Calvin Klein)의 선전이 돋보이고 있다.

캘빈클라인에 패션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큰 이유중 하나는 이
브랜드가 세계 명품시장을 휩쓰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태생이 아니라는데
있다.

캘빈클라인은 최근 센죤(Saint John)이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수입명품시장에서 유일하게 미국상품의 자존심을 지킨 브랜드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상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입고가품
시장에서 비유럽지역 명품브랜드의 명맥을 외롭게 유지해온 셈이다.

미국의류는 사실 3~4년전까지만 해도 거품소비에 힘입어 국내시장에
상당수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 96년 가을, 다나 카렌(Donna Kalen)등 미국을 대표하는 유명 브랜드
들이 국내 소비자에게 선보였으나 불황한파가 닥치자 얼마못가 문을 닫고
말았다.

이때 함께 들어온 캘빈클라인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국브랜드다.

패션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한국시장내 판매권을 가진 수입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영업 노하우에서 찾고 있다.

또 수입시판되기 이전부터 국내 소비자들의 귀와 눈에 친숙했던
캘빈클라인의 높은 대중적 인기도 살아남는데 한몫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캘빈클라인은 수트 한벌에 2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디자이너
부틱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브랜드중 하나다.

이때문에 상류층이 아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고가 의류상품보다 오히려
속옷과 향수 청바지의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브랜드 세분화 전략에 따라 최고가품이 나오는 퍼스트라인(First Line)이
국내에 수입되기 전부터 이미 값싼 향수와 청바지 등이 캘빈클라인의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패션에 관심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이미지의 캘빈클라인
광고사진을 모으는 일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캘빈클라인은 감각적 디자이너의 이미지를 과감한 기법의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 이를 토대로 다양한 세컨드 라인(Second Line)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지난 1970년대말 이 브랜드는 진(Jeans)을 도입, 청바지 시장과 광고
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 아이돌 스타였던 영화배우 브룩쉴즈가 출연, "청바지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며 말한 캘빈클라인의 진 광고는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미국시장 전체에 브랜드명과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82년에 내놓은 캘빈클라인의 언더웨어는 몸에 착 달라붙은 속옷을
입은 남성을 광고에 등장시켜 제품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는 깨끗하고
섹시한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 이스케이프 이터너티 옵제션 cK원과 같은 향수와 그 광고사진도
캘빈클라인의 자랑거리다.

옷에서 보여줬던 세련되면서도 자극적인 느낌이 그대로 묻어있었던
이들 제품은 향수시장에서 전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또 캘빈클라인을 가장 미국적 컨셉트를 지닌 미국 최고의 디자이너
브랜드로 성장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 살롱 >>

캘빈클라인은 1968년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캘빈 클라인이 그의 유년시절
친구인 베리 슈발츠로부터 1만달러를 빌려 뉴욕 7번가에 여성용 코트
전문점을 연데서 시작됐다.

캘빈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과 슈발츠의 사업가적 기질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이 조그만 업체는 그 후 패션바이어 본 위트 텔러와의 만남을 통해
그 이름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브생 로랑을 비롯한 패션관계자와 기자들은 이 브랜드의 깔끔한 라인과
날씬한 형태에 매료됐고 이에 고무된 캘빈클라인은 그의 제품라인을 확장,
남녀 기성복 전부와 스포츠웨어, 액세서리 향수 홈컬렉션까지 생산하게 된다.

그는 패션계에서 권위있는 코티 어워드를 73년부터 75년까지 3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이는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된다.

< 설현정 기자 so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