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초우량은행인 HSBC가 서울은행을 인수했다.

HSBC의 작년 순이익은 43억달러.

우리돈으로 5조원이상의 흑자를 낸 은행이다.

한때 고사위기에 몰렸던 서울은행으로선 천만다행한 일이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미국계 뉴브리지 캐피털에다 HSBC까지 가세함으로써
국내 은행권은 그야말로 대격전의 장이 됐다.

HSBC는 철저하게 선진경영으로 무장돼있다.

국내 은행을 다 합쳐도 HSBC의 자산규모에 못미친다.

뉴브리지와 HSBC는 리보(런던은행간 금리)이하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이 자금을 국내에 쏟아부으면 국내은행들은 배겨낼 재간이 없다.

도저히 경쟁이 안된다.

국내은행 입장에선 당연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긴장해야만 살아남는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일본 "니케이 비즈니스"사는 작년말 일본에서 영업중인 은행에 대한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놀랍게도 10위안에 외국계 금융기관이 5개나 포진했다.

1위는 씨티은행에 돌아갔다.

메릴린치 JP모건등도 포함됐다.

자산기준 세계 최대라는 도쿄미쓰비시은행은 3위에 그쳤다.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상품.서비스 <>장래성 등에서 대부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 복잡한게 아니다.

구조조정으로 일본 은행들이 죽을 쑤고 있는 동안 외국은행들이 순식간에
시장을 파고 들었다는 얘기다.

97년에 일본판 금융빅뱅이 있었으니 불과 1년만에 판도가 확 달라진 것이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 없을 것이란게 금융계 중론이다.

고객들의 움직임도 먼저 감지된다.

우량으로 분류되는 한 중소기업체의 사장은 "금리가 싸고 서비스만 좋다면
국내은행 외국은행을 가릴 필요가 뭐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국내 은행들이 혁신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
지고 있다.

실상은 어떤가.

피튀기는 경쟁이 현실화됐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물론 일부 은행에선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은행들은 아직도 변화에 무디기만하다.

은행원들은 다른 은행이 뭘 하는지 매일 체크하느라 정작 자기일은
뒷전이다.

정부에서 금리 내리라고 하면 수익성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그 다음날
즉각 실행에 들어간다.

남들이 비상임이사회를 강화하면 무턱대고 따라간다.

구조조정이후 은행원들의 책임경영 의식이 강화되고 "독기"도 올랐지만
"파란 눈"을 대적하기엔 아직 역부족인 것 같다.

실력 뿐 아니라 마음자세도 그렇다.

< 이성태 기자 ste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