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졸업식이었다.

섬진강가의 전북 임실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

전교생이 16명밖에 안되는 이 학교에서 지난19일 두 명의 어린이가
졸업했다.

밤새 내린 눈을 싸락싸락 밟으며 아이들이 모여들자 교정은 금방
훈훈해졌다.

양지 바른 운동장 한 쪽에는 벌써 냉이 잎이 돋았다.

이날 창희와 진하는 잊지 못할 졸업 선물을 받았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시인 김용택(51) 선생님이 전교생의 작품을 모은
동시집 "학교야, 공차자"(보림)를 엮어줬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는 "어린 시인"들의 해맑은 동심이 가득 들어 있다.

재학생 전원과 서울 전주에서 교환학생으로 와 1주일간 생활한 2명, 지난해
졸업생 2명, 언니를 따라 학교에 놀러다니는 미취학 어린이 1명의 시가
실렸다.

아이들의 앙증맞은 그림까지 곁들여져 있다.

"우리 집 소는 매일매일/껌을 씹는다//나도 껌 하나만 주지/혼자만
하루종일 껌을 씹는다"(6학년 이창희 "소")

"누가 감히 나를 뭐라 해도/나는 나//호적을 바꾼다 해도/나는 나//아무턴
간에/나는 나"(6학년 박진하 "나는 나")

일약 스타가 된 창희와 진하는 "한꺼번에 너무 유명해져서 기분이 좋다"며
"꾸밈없이 쓰라는 선생님 말씀대로 했더니 글쓰기가 참 쉬웠다"고 활짝
웃었다.

다른 아이들의 시도 천진스럽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어머니가 좋다. 왜 그냐면/그냥 좋다"(2학년 서동수 "사랑")

"우리 마을에/참새 한 마리가/마당에 떨어져서/죽었다/불쌍해서 무둬/줬다"
(4학년 최빛나 "참새")

"아기는/엄마가 없의면/웅웅 운다"(1학년 김선옥 "아기")

맞춤법이 틀리고 띄어쓰기도 제멋대로지만 티없이 맑고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가운데에는 날로 피폐해지는 농촌마을의 쓸쓸함을 담은 의미심장한
작품도 들어 있다.

"사람들이/다들 도시로/이사를 가니까/촌은 쓸쓸하다.//그러면 촌은 운다.
//촌아 울지 마."(5학년 박초이 "쓸쓸한 촌")

이날 졸업식이 끝난 뒤 옥정호숫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최근들어
가장 많은 손님이 모였다.

"영원한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특유의 유머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동안 학부모들은 모처럼 주름살을 폈다.

양어장집 아들인 서동수(2학년)는 "물고기 잡기"를 낭송했다.

책을 출간한 보림출판사 권종택 대표도 "위대한 시인들을 한자리에서
뵙게 돼 영광스럽다"고 거들었다.

< 임실=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