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저널] '뮬란과 국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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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만화영화 뮬란이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에는 비디오까지 시판되어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보고 또 보고"를
계속하고 있다.
만리장성, 어마어마한 궁전과 함께 부각된 중국의 역사와 문화, 훈족과의
전쟁속에서 핀 부녀애, 정의, 애국심 등 중국이 자랑하고 싶은 모든 것이
만화속에 아름답게 용해된 영화다.
이 영화에 빠져봤던 어린 동심은 중국을 언제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동경의 세계로 그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요즘 중국인들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뮬란 신드롬 을 즐기고 있으며
대대적인 차이나 주식회사(China Inc.) 이미지 광고를 해대고 있는 셈이다.
이와 극대비되는 것으로 70년대말에서 80년대초에 상영된 영화중 디어 헌터
가 있었다.
미국 철강도시인 피츠버그 출신의 노동자들이 베트남 전쟁에 배치돼 전혀
다른 문화와 전쟁속에서 겪는 정신적 갈등을 그린 영화였다.
아름다운 애팔레치안 산맥의 자연속에서 사슴을 사냥하며 즐기던 주인공들
이 베트남이라는 무대에서는 "인간사냥꾼"의 대열에 끼어들 수 밖에 없었다
는 은유가 포함된 반전영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주제와 함께 전달된 것은 사선에서의 공포, 도박, 매음 등
베트남사회가 던져주는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이미지가 진하게 깔려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잔상은 광범위했고 또 오래 지속됐다.
요즘과 같은 무한경쟁속에서 뮬란과 디어 헌터가 엮어내는 경제적 득실
효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는 것은 그 물건 뒤에 깔려 있는 이미지를 사는 것
이라는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본제품을 사는 사람은 일본의 섬세한 이미지를 사고 불란서의 화장품과
포도주를 사는 사람들은 불란서의 문화를 사는 것이라고 했던가.
과연 세계 소비자들 머리속에 담겨 있는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일까.
50년이 지났음에도 한국전쟁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세계인들은 남북을 가리지 않는다.
남한이건 북한이건 모두 한국인일 뿐이다.
처참한 기아속의 전쟁준비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개인숭배등 북한의 이미지
는 한민족 전체를 문명세계의 외계인들처럼 보이게 할 뿐이다.
우리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심을 수 있는 기회와 전환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88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들은 한국의 변화된 모습에 경탄을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이어 세계인들은 끊임없는 데모대와 무장경찰, 머리 띠 두른
노사분규현장, 멱살잡고 싸우는 국회의원 등 폭력적 장면들을 목격해야 했다.
이같은 이미지가 우리 상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는 불문가지다.
이미지 관리.
경제전쟁시대에 이것처럼 중요한 무기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매체관리만큼 중차대한 사안도 없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당한 시점에 터져 나온 월스트리트저널이나
파이내셜타임즈의 부정적 기사 한 꼭지는 수십억달러의 손실과 맞먹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녀들은 끊임없는 스캔들을 뿌리고 있지만 그녀처럼
세계 미디어를 사로잡으며 영국을 세계에 선전하는 움직이는 광고탑도 없다.
그런 의미에선 넬슨 만델라 또한 남아프리카를 대변하는 이미지 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대통령을 광고에 등장시킨 연유가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계는 스포츠로 묶여가고 있다.
특히 축구는 미국만 제외하면 전세계가 열광하는 "쇼우 케이스"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2002년 월드컵에 대한 한국내 무관심은 이상하기까지
하다.
군사정부시절이었지만 88 올림픽을 위해서는 온 나라가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월드컵을 위해서는 축구전용구장 하나 짓는 것을 놓고도 정치적인
고려에서 왔다갔다하는 정도다.
국가적 이미지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뮬란이라는 "동양의 잔다르크"가 중국제품이미지를 제고시킨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
최근 한국기업들중에는 외국 영화회사들과 합작을 거론하고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한국의 뮬란"을 창조해 보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서 한단계 더 뛰어 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 양봉진 워싱턴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8일자 ).
최근에는 비디오까지 시판되어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보고 또 보고"를
계속하고 있다.
만리장성, 어마어마한 궁전과 함께 부각된 중국의 역사와 문화, 훈족과의
전쟁속에서 핀 부녀애, 정의, 애국심 등 중국이 자랑하고 싶은 모든 것이
만화속에 아름답게 용해된 영화다.
이 영화에 빠져봤던 어린 동심은 중국을 언제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동경의 세계로 그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요즘 중국인들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뮬란 신드롬 을 즐기고 있으며
대대적인 차이나 주식회사(China Inc.) 이미지 광고를 해대고 있는 셈이다.
이와 극대비되는 것으로 70년대말에서 80년대초에 상영된 영화중 디어 헌터
가 있었다.
미국 철강도시인 피츠버그 출신의 노동자들이 베트남 전쟁에 배치돼 전혀
다른 문화와 전쟁속에서 겪는 정신적 갈등을 그린 영화였다.
아름다운 애팔레치안 산맥의 자연속에서 사슴을 사냥하며 즐기던 주인공들
이 베트남이라는 무대에서는 "인간사냥꾼"의 대열에 끼어들 수 밖에 없었다
는 은유가 포함된 반전영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주제와 함께 전달된 것은 사선에서의 공포, 도박, 매음 등
베트남사회가 던져주는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이미지가 진하게 깔려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잔상은 광범위했고 또 오래 지속됐다.
요즘과 같은 무한경쟁속에서 뮬란과 디어 헌터가 엮어내는 경제적 득실
효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는 것은 그 물건 뒤에 깔려 있는 이미지를 사는 것
이라는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본제품을 사는 사람은 일본의 섬세한 이미지를 사고 불란서의 화장품과
포도주를 사는 사람들은 불란서의 문화를 사는 것이라고 했던가.
과연 세계 소비자들 머리속에 담겨 있는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일까.
50년이 지났음에도 한국전쟁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세계인들은 남북을 가리지 않는다.
남한이건 북한이건 모두 한국인일 뿐이다.
처참한 기아속의 전쟁준비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개인숭배등 북한의 이미지
는 한민족 전체를 문명세계의 외계인들처럼 보이게 할 뿐이다.
우리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심을 수 있는 기회와 전환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88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들은 한국의 변화된 모습에 경탄을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이어 세계인들은 끊임없는 데모대와 무장경찰, 머리 띠 두른
노사분규현장, 멱살잡고 싸우는 국회의원 등 폭력적 장면들을 목격해야 했다.
이같은 이미지가 우리 상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는 불문가지다.
이미지 관리.
경제전쟁시대에 이것처럼 중요한 무기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매체관리만큼 중차대한 사안도 없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당한 시점에 터져 나온 월스트리트저널이나
파이내셜타임즈의 부정적 기사 한 꼭지는 수십억달러의 손실과 맞먹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녀들은 끊임없는 스캔들을 뿌리고 있지만 그녀처럼
세계 미디어를 사로잡으며 영국을 세계에 선전하는 움직이는 광고탑도 없다.
그런 의미에선 넬슨 만델라 또한 남아프리카를 대변하는 이미지 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대통령을 광고에 등장시킨 연유가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계는 스포츠로 묶여가고 있다.
특히 축구는 미국만 제외하면 전세계가 열광하는 "쇼우 케이스"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2002년 월드컵에 대한 한국내 무관심은 이상하기까지
하다.
군사정부시절이었지만 88 올림픽을 위해서는 온 나라가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월드컵을 위해서는 축구전용구장 하나 짓는 것을 놓고도 정치적인
고려에서 왔다갔다하는 정도다.
국가적 이미지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뮬란이라는 "동양의 잔다르크"가 중국제품이미지를 제고시킨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
최근 한국기업들중에는 외국 영화회사들과 합작을 거론하고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한국의 뮬란"을 창조해 보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서 한단계 더 뛰어 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 양봉진 워싱턴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