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김영환 의원은 "IMF로 가야한다"는 김 전대통령에 대한 최초
건의가 이미 퇴임했던 홍재형 전경제부총리 등 "비공식라인"에서 전달됐다는
점을 들어 "정규군 대신 예비군이 나서서 싸운 형국"이라고 비난했다.

김 의원은 또 환란 당시 금융관계법 입법을 둘러싼 정부내 갈등을 상기시키
면서 "한국은행과 재경원은 밥그릇 싸움에 몰두해 있었고 한은 마당에는
농성텐트가 펼쳐져 있었다"며 "이들 "정규군"에게 환란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몰아세웠다.

<>.추미애 의원과 이경식 전한은총재는 97년 외환위기가 몰려올 당시 한은이
왜 금리인상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를 놓고 한바탕 설전.

추 의원은 "금리 인상조치만 취했더라도 외국돈이 그만큼 빠져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 국민들은 몸이 아파도 제대로 된 의사조차 만나지 못한 격"
이라고 한은의 정책부재를 비판.

이 전한은총재는 이에 대해 "의사가 처방도 제대로 내리고 투약할 의지도
있었지만 경제의 체력이 투약을 견뎌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금리인상은
불가능한 조치였음을 강조.

이 전총재는 또 "몸무게가 1백kg인 사람이 다이어트를 할 때 갑자기 50kg
으로 몸무게를 줄이면 사망하고 만다"며 "천천히 단계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자민련 정우택 의원과 강경식 전부총리가 지난 74년과 97년 외환위기
탈출 비교론으로 또 다시 설전을 벌였다.

정 의원은 "74년에는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원화환율을
20%나 절하하고 단기유동성 확보에도 성공했다"며 "97년에는 경제관료들의
안이한 위기의식과 대통령의 무지로 적절한 대처를 못했다"고 이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강 전부총리는 "74년 1차석유파동 때와 97년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못박았다.

강 전부총리는 이어 "지난 79년 2차 석유파동때는 10.26사건으로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도 금리를 18%에서 24%로 상향조정했으며 석유값도 올리고
변동환율도 실시해 대외신인도를 높여가며 위기를 탈출했다"고 반박했다.

정 의원은 "지금 74년과 비교를 하고 있는데 왜 79년과 비교를 하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강 전부총리는 "79년에도 마이너스 성장률로 국가가 파산지경에
몰렸고 중화학 분야의 과잉투자가 있었다"며 "시기적으로 가까운 때를 비교
하는게 낫다"고 답했다.

정 의원이 "왜 자꾸 변명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느냐"고 따지자 강
전부총리는 "79년~80년에는 결심을 하면 행동을 옮겼지만 97년에는 결정이
돼도 실천되지 않은게 문제였다"고 자신의 논리를 굽히지 않았다.

< 한은구 기자 to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