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 첫날에 이어 둘째날인 26일 최대 관심사였던 임창열 전
부총리의 97년 11월19일 기자회견 이전 "IMF행 결정" 사실인지 여부와 관련,
강경식 전부총리와 김인호 전청와대경제수석은 각각 "알았을 것" "내가
알려줬다"고 증언했다.

반면 첫날 참고인으로 나온 임 전부총리는 "IMF로 가는 방침에 대해 구두로
재가가 난 것은 11월 19일이었다"고 주장했었다.

청문회 보고기관 보고나 증인들의 증언은 "IMF행은 11월13일 결정됐고 14일
김영삼 전대통령의 재가가 난 뒤 16일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협의를 했다"
는데 일치하고 있다.

강.임 전부총리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정세균 의원은 강 전부총리에게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
했느냐 성공했느냐"고 물어 "실패했다"는 대답을 유도한 뒤 곧바로 구
여당인 신한국당의 "환란 책임론"을 제기했다.

강 전부총리는 "나는 정책실패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책임은 투표로 심판받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어 "나를 포함해 책임이 전혀 없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집권당의 책임론을 거론하면 야당도 책임 있는 것"이라며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회의측을 겨냥했다.

위원들은 또 날 강 전부총리가 환란 직전 모 신문사 주최의 지방순회
강연에 나선 것도 세차게 질책했다.

김원길 정세균 의원등은 "경제가 위급한 상황에서 30개 도시를 돌면서
홍보전을 계획한 것은 위기를 너무 낙관한 것 아닌가"라며 "이는 시기상으로
대선운동을 측면지원한 의도가 있다"고 공격했다.

<>.강 전부총리는 97년 11월9일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이경식 한은총재와 윤진식 청와대 조세금융비서관은 IMF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임중에는 챙피해서도 IMF로 갈수 없다"고 얘기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런식으로 표현하겠느냐"며
"그것은 나에 대한 인격 모독"이라고 덧붙였다.

<>.강 전부총리와 김 전수석에 대한 신문은 전체적으로 의원들의 "역량부족"
이었다는게 대체적인 평이다.

의원들은 준비부족, 경제실력 부족으로 강 전부총리의 논리.판단을 압도
하지 못했으며 적합지 않은 질문을 남발했다.

그러다가 결론에서는 "경제를 망친 책임을 져라"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는 공방만 오가기 일쑤였다.

가장 시끄러웠던 대목은 추미애 의원이 "YS는 졸장부"라는 내용이 적힌 강
전부총리의 98년1월의 일기를 거론했던 순간이었다.

강 전부총리는 "환란과 관계없는 퇴임후의 개인 일기를 이런 자리에서
거론함은 적절치 않다"며 일기를 토대로 한 질문에 응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부모도 자식의 일기를 보지 않는다"며 "법률을 공부한 추 의원이 그럴
수 있느냐"고 역공했다.

추 의원은 질의에서 "모든 국민이 눈물을 삼키고 있는 상황에서 외환위기에
안일하게 대처한데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일기에서 찾아볼 수 없어 서글픔을
느꼈다"고 몰아붙였다.

< 한은구 기자 tohan@ 김남국 기자 n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