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바슈롬의 이철용(54) 사장.

그는 지난해 6월 자사의 지분 절반을 세계 최대 콘택트렌즈 업체인 미국
바슈롬에 넘겼다.

오너사장에서 바슈롬이라는 다국적기업 한국지사의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후 반년.

이 짧은 기간 회사에는 대변혁이 일어났다.

변혁의 엔진은 책임경영체제.

영한바슈롬의 전직원들은 각자 분기별 실적목표를 세운다.

목표 달성여부에 따라 연봉이 결정된다.

실적의 최우선 잣대는 "이익"이다.

매출은 그 다음 문제다.

영업직원들의 경우 외상기간을 얼마나 단축하느냐도 새로운 평가기준이다.

이 사장의 연봉은 EVA(경제적 부가가치) 성적에 따라 결정된다.

EVA는 투자자본의 효율성,현금흐름,수익성을 종합한 경영평가지표다.

사장에서 말단직원까지 수익과 현금흐름 중심의 경영을 펼치지 않을 수
없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현금이 최고"인 요즘 이 회사는 거꾸로 현금수금을 중단했다.

영한이 거래하던 안경점을 비롯 안과 등 유통망은 4천여곳.

여기를 돌며 수금을 하는데 드는 세일즈맨들의 시간과 노력은 엄청났다.

때로는 10만원, 20만원을 받기 위해 한두시간씩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이 시간과 노력을 서비스나 품질향상으로 돌린다면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영한의 수금활동은 그래서 중단됐다.

"수금은 은행지로로 하라"

은행지로를 통한 수금은 안경점등의 신용을 전제로 한다.

자연히 "유통망을 정비하자" "수익성이 높고 믿을만한 유통망만 추리자"
라는 모토가 생겨났다.

그래서 영한바슈롬의 유통망은 1천3백곳으로 정예화됐다.

결과는 물류비 영업비 등의 절감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생긴 여력을 서비스 개선으로 돌리자"

간판을 새로 정비하고 안경사 교육을 강화했다.

각종 서비스의 질을 높였다.

결과는 예상한대로였다.

유통망이 70%나 줄어들었지만 매출은 10~15% 감소하는데 그쳤다.

IMF 여파로 시장자체가 30~40%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매출이
늘어난 것이다.

"효율성 위주 경영"의 파워는 이렇게 셌다.

어음과 가계수표의 만기도 2개월이내로 원칙을 세웠다.

3개월을 넘길 경우 은행이자만큼 패널티를 붙여 받았다.

자금관리의 효율화로 빚도 다 갚아버렸다.

합작당시 3백%에 달하던 부채비율을 0%로 만들었다.

미국 바슈롬의 입장에서는 국제금리의 3~4배에 달하는 한국의 은행돈을
쓰는게 비효율로 비쳐지는 것은 당연하다.

투자나 자금운용, 영업 등 모든 면에서 시중금리이상의 수익을 얻지 못하는
사업은 올스톱이다.

"감으로 하는 마케팅"시대도 끝났다.

모든 것은 시장조사등 철저한 사전조사에 기초한다.

그러다보니 "시장조사 예산이 5배로 증가했지만 강행했다"(유병훈 마케팅
실장)

바슈롬이 영한과 합작한 직후 처음 한 작업도 "트래킹(tracking)"이었다.

한국의 소비패턴을 5년간 시계열로 정밀분석한 것이다.

결론은 소비패턴이 1회용 제품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사용 렌즈, 3개월사용 렌즈, 3개월사용 난시용 렌즈 등 무려
5종의 신제품을 한꺼번에 출시하기로 했다.

제품이 다양해지고 신제품 도입이 빨라진 것이다.

물론 튼튼한 재무구조, 과학적 마케팅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임경영, 효율경영을 하자면 직원 스스로 전문화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인 허먼 메이너드와 수전 머턴스가 "제4의 물결"에서
"평생 학습의 장"을 미래 기업조직의 특성으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영한바슈롬은 합작직후 영어, 세일즈 프리젠테이션, 협상기술 등 마케팅,
영업, 재무, 회계, 모든 부문의 교육프로그램을 짰다.

올해 이 회사의 교육예산은 지난해의 3배.

직원 1인당 교육시간도 3배로 늘어났다.

이 모든 변혁의 나침판은 3S.

"스피드(Speed), 단순화(Simply), 표준화(Standardization)다"(이재규
관리담당 상무)

이제 최고경영자의 역할도 달라졌다.

"예전엔 1백% 결정권을 쥐었다. 그러나 이제는 3분의 1로 줄었다. 3분의
1은 미국본사나 홍콩 아시아 본부, 나머지는 임직원에게로 결정권이 이양
됐으니까. 사장의 역할이 중앙집권적 결정자에서 최상의 선택을 찾아 의견을
조율하는 조정자로 바뀌었다고나 할까"(이철용 사장)

< 노혜령 기자 hroh@ >

[ 영한바슈롬 경영변화 ]

<> 재무구조
- 합작 전 : 부채비율 300%
- 합작 후 : 무차입

<> 인사
- 합작 전 : 연공서열
- 합작 후 : 연봉제+성과급제

<> 조직
- 합작 전 : 부/과 중심
- 합작 후 : 팀제

<> 마케팅
- 합작 전 : 민감한 시장변화 파악 미흡
- 합작 후 : 철저한 시장분석 시장조사비 5배 증액

<> 교육/훈련
- 합작 전 : 영어 등 교육은 선택사항
- 합작 후 : 영어교육 필수, 업무별 교육훈련 강화, 교육훈련예산 3배증액

<> 유통망
- 합작 전 : 4천여곳
- 합작 후 : 1천3백여곳으로 정예화

<> CEO 역할
- 합작 전 : 중앙집권적 의사결정자
- 합작 후 : 조정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