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에 황혼이 깔리고 있다"

미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하나둘 조락하고 있음을 빗댄 말이다.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던 CEO들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CEO들은 대중의 우상이었다.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설파한다.

정치인 못지 않은 카리스마가 그들에게 돌아간다.

헨리 포드(포드자동차), 알프레드 슬로안(제너럴모터스)등은 1920년대
미국인의 신화였다.

지난 50년대 이후 CEO들은 대중의 관심에서 한동안 멀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90년대 들어 또다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은 "정보기술의 신"으로 전세계를
활보했다.

월마트의 샘 월튼 회장,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 항공업체인
AMR의 로버트 크랜달 회장 역시 90년대 미국인들의 우상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일 "90년대 우상으로 떠올랐던 CEO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CEO전성시대"가 퇴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EO들의 우상이 20년대 흥성기->50년대 퇴조기->90년대 흥성기를 거쳐
또다시 퇴조기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이같은 현상은 이미 표면화되고 있다.

한때 "정보사회의 신"으로 추앙받던 빌 게이츠는 독금법 위반 혐의에
걸려 법정으로 끌려 내려와 이제는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잭 웰치 GE회장은 곧 회장직을 사임한다.

누가 뒤를 잇든 잭 웰치 회장의 카리스마를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

크랜달 회장은 최근 도널드 카티에게 AMR회장직을 넘겨줬다.

그러나 "도널드 카티"라는 이름을 아는 미국인은 드믈다.

미국인들은 CEO들의 세대 교체기를 맞아 우상을 잃어버리고 있는 셈이다.

"CEO신화"가 깨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90년대의 우상들이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CEO들은 회사내 또다른 카리스마를
용납하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나누면 반감된다.

기존 CEO들은 차기 후계자를 철저히 실무형으로 키워왔다.

실제로 빌 게이츠의 후계자가 누군지 일반인들은 알지 못한다.

기업이 더이상 CEO의 지명도를 요구하지 않는 것도 우상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인이다.

기존에는 "잭 웰치=GE""샘 월튼=월 마트"등의 공식이 성립됐다.

기업이 대외홍보를 위해 CEO의 지명도를 활용한 결과다.

그러나 기업브랜드는 이미 대중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CEO가 나설 필요가 없다.

대중은 "월마트"라는 브랜드는 알아도 샘 월튼의 후계자인 "데이비드
글래스"는 모른다.

CEO들이 대중에서 멀어진 것은 기업환경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CEO들은 급격히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직면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들은 매 순간 "피를 말리는"의사결정을 한다.

대외업무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카티 AMR사장은 "취임후 6개월동안 업무처리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며
"TV출연 등 대외적인 업무는 엄두도 못냈다"라고 말한다.

대외활동은 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정도로 제한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당연히 대중과 접할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 경영에서 카리스마의 중요성이 감소된 것도 CEO들의 신화를 깨뜨리는
요소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 조직들은 프로젝트에 따라 팀별로 움직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연결되는 종래의 피라미드식과는 다르다.

CEO들이 병렬로 연결된 팀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팀들과 함께
뛰어야 한다.

특히 인터넷으로 촉발된 정보혁명은 정보유통 채널의 다양화를 불러왔다.

CEO들이 고급정보를 얻겠다며 정.관계 고위층 인사들과 사교해야 하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토로사의 캔드릭 멜로스 회장은 "이제 CEO들이 카리스마를 등에 업고
종업원위에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종업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는
CEO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사회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CEO들도 퇴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적자를 냈을 경우 주주들은 언제든지 CEO를 갈아치운다.

명예회복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영웅이 탄생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신들이 떠난 정원에는 이제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만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 한우덕 기자 woody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