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힘들었던 나날이었지요.
국가부도의 위기를 겨우 넘기고 나니까 구조조정과 실업의 아픔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일 5천명씩 늘어난 실업자가 이제는 2백만명에 육박한답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자살하는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보험금을 노려 자신의 발목을 자르는 일도 벌어졌더랍니다.
직장에서의 ''퇴출''이 곧 삶으로부터의 ''자발적 퇴출''을 강요하는 상황
이었습니다.
이제 또 세월은 무심히 흘러 새해를 맞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IMF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저의 단순함 때문일 겁니다.
IMF는 국제통화기금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국제기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경제위기라는 의미도 있고, 국가위기라는 뜻도 있습니다.
도덕적 붕괴 혹은 사회적 일탈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구조조정 제도개혁, 더 나아가 "새 시대의 예고"라는 긍정적
의미도 그 속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간의 IMF 관리체제가 마냥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자조하고 싶습니다.
MIT 경영학과 교수인 피터 셍게는 21세기는 ''붕괴의 세기''로 불렀다지요.
국경이 붕괴되고, 산업의 경계가 붕괴되고, 과거의 권위가 붕괴되며,
정부의 기능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붕괴''에서 새 희망을 봅니다.
붕괴는 언제나 ''건설''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새로운 건설을 이야기 할 때일는지도 모릅니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그랬던가요.
더구나 21세기가 바로 코앞입니다.
새벽의 시장풍경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생동감 넘치는 시장의 활기 말입니다.
어제 출근길에 저는 다시 확인했습니다.
내 주변의 이웃들 덕에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존재의 이유앞에 숙연해지는 새해 아침입니다.
내일도 태양은 어김없이 뜰 것입니다.
형의 건투를 빕니다.
< 이의철 정치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