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증시는 지옥과 천당을 수시로 드나들만큼 변화무쌍했다.

종합주가지수가 300선 밑으로 추락자 액면가를 밑도는 종목이 상장사의
70%에 육박하기도 했고 1달사이에 주가가 1백%이상 오르는 종목이 속출하기
도 했다.

그런만큼 일반투자자들이 주가흐름을 따라잡기가 무척 힘들었고 증시에는
새 풍속도가 생겨났다.

투자자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유행어도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파란 눈만 따라 다닌 증심 =금융장세가 분출되기 직전인 9월까지는 외국인
투자가 장세를 좌지우지 했다.

자연스럽게 푸른 눈을 가진 투자자(외국인)의 매매동향에 검은 눈 투자자들
의 레이더가 집중됐다.

그래서 "오늘 외국인은..."이라는 단 두마디로 시황을 묻는 "축어법"이
발달했다.

외국인의 투자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는 "달러표시 주가 단말기"도
등장했다.

주식투자자라면 거의 모두 매일 아침 일찍 뉴욕외환시장의 엔.달러 환율을
체크해야만 했다.

장중엔 도쿄환시의 환율등락을 리얼타임으로 체크해야만 장세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을 수 있었다.

심지어 외국의 기관투자가들이 국가별 주식매입비중을 정할때 참고로 삼는
MSCI(모건스탠리 주가지수)까지 증권가 상식으로 통용됐을 정도다.

<>개미군단의 변신 =일반 소액 투자자들의 매매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통적으로 증시 대중화의 주체 세력이었던 "핸드백(주부) 부대"와 더불어
명퇴자금으로 객장을 찾은 "아저씨 부대"가 개미군단의 핵심 연대를 형성했
다.

개미군단은 하루 주가 변동폭이 15%정도까지 넓어진 시장제도의 변화로
신용거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약간만 삐끗해도 투자원금을 몽땅 날리는 깡통계좌를 차기 십상이기 때문이
다.

개미군단이 일으킨 "4.4분기의 돌풍장세"에서는 종목 유행어가 쏟아졌다.

그중 "장은증권주 사주셔요"는 증권주에 대한 과열 투자를 경계한 유행어.

장은증권은 퇴출된 증권사로 주권거래가 정지된지 오래된 종목이다.

증권주와 건설주가 걷잡을 수 없이 계속 치솟는 상황에서 증권사 영업직원
들은 상승 이유를 묻는 고객들에게 "묻지마 주식"이라고 대답했다.

원래 "묻지마 주식"은 상승 배경이 아리송한 작전 종목을 일컫는 증시 속어
였다.

<>살생부 장세와 구명부 증시 =증시유행어만 들어도 장세 강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 최악의 약세장에서는 "넝마주" "쓰레기주" "하이애나주" "1박2일
주"란 말이 투자자의 입에 오르내렸다.

모두 주가 약세를 반영한 섬뜩한 말들이다.

하이애나주는 개인투자자들을 유혹한후 매물을 갑자기 던져서 "뜯어먹는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짝시세를 빗댄 "1박2일주"도 비슷한 의미다.

"3박4일주"는 그런대로 양질의 종목으로 통했다.

또 주가가 1천원미만으로 떨어진 종목들이 쉽게 목격되자 "껌값 주가"
"담배값 주가"라는 자조섞인 말이 등장했다.

기업구조조정과 관련된 상장사 퇴출의 공포 분위기를 반영한 "살생부 장세"
란 말도 유행했다.

기업들의 자본금 감축 공시가 악재로 부각하면서 "감자가 무엇이죠"라고
묻는 학구적인 질문도 회자됐다.

반대로 약세장세속에도 소리 없이 주가가 살금 살금 오른 "레간자 주식"이
주목을 끌었다.

장세 회복과 더불어 구조조정 모범회사 주식의 급등세를 투영한 "구명주"가
뒤따라 왔다.

저가대비 90배라는 경이적인 주가상승률을 기록한 "한화증권 우선주"는
우승말을 맞춘 "마권 주식"에 비유됐다.

<>신 투자기법 경연 =주가지수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거래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한해였다.

프로그램 매매물량이 중요한 주식투자지표로 등장했다.

특히 개인투자가들의 주가지수선물 투자비중이 전체의 50%를 넘어서는 날이
흔해졌다.

부도 사태가 절정에 달해 현물시장이 흔들리는데 비례해 "선물시장엔 부도
가 없다"는 말이 등장해 선물투자 열기를 더했다.

또 투자자들이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나홀로 거래하는 사이버 증권거래도
무시 못할 정도로 늘어났다.

증권가에서는 올 한해동안 인터넷같은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거래된 주식 및
선물 옵션의 거래대금이 4조원어치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양홍모 기자 y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