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저널] '고시제도를 폐지하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과거와 마찬가지로 새정부도 개혁을 앞에 내세웠다.
돌이켜보면 현정부만큼 좋은 개혁여건속에 출발한 정부도 없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역설의 틀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은행 몇 개를 통폐합하고 재벌들에게 사업을 맞교환하라고 다그친
게 전부라는 것이 일반국민의 인식이다.
개혁의 최우선순위에 올라 있어야 할 정치권과 공직사회의 개혁은 뒷전으로
밀어 놓은 탓이다.
진정한 개혁을 위한 황금기회를 놓친 것이다.
실업자 수는 이미 2백만을 넘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공무원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얘기는 듣기 어렵다.
한국에서 오래 활동한 한 외신기자의 촌평은 귀기울여 들어 볼만하다.
"한국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개혁 주체세력들이 공무원들의 논리에
밀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줏대가 있어야 한다.
확고한 신념과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는 한 기존행정관료들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텃세에 개혁의지는 눈 녹듯 녹아 없어져 버리기 일쑤다.
관료 몇 사람만 담합하면 아무리 개혁성향이 강한 사람도 칼자루를 뺏기게
되어 있는 것이 한국사회다"
이 외신기자의 조언은 계속된다.
"이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하지만 대통령도 관료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이 내놓는 자료와 논리에
현혹되지 않을 수 없게되고 만다.
이것이야 말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다.
불행하게도 현 정부의 칼자루는 이미 기존 공무원들 손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기 전 일이다.
한 내무부관료가 금융인을 찾아와 협조를 구했다.
지방자치제의 성공여부는 지방재정의 확충에 달려있고 그 대안으로
지방채를 집중 연구해보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실력을 과시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 관료의 표정은 전혀 딴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아래 사람들에게 지방채를 잘 아는 전문가로 알려져 버리면 학수고대해
오던 군수자리는 공염불이 되어 버린다.
따분하게 지방채나 붙들고 앉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그는 지방채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또 알아도 아는 체 하지도
않았다.
그가 해야할 일을 금융전문가가 대신 한 것은 물론이다.
그의 처세와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얼마 후 그는 지방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어엿한 일선행정군수로
나간 것이다.
전문성이 오히려 장애가 되는 한국관료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미국이 강한 이유 중 하나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관리한다는
점이다.
경제학자인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말할 것도 없고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또한 대표적인 금융전문가다.
루빈이 하버드 예일 영국의 LSE등 최고의 학부를 거친 것을 사실이지만
이 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뉴욕의 골드만 삭스에서 26년간 잔뼈가 굵은
실무금융전문가라는 점이다.
그는 CGS&H의 변호사이기도 했다.
관념적인 암기식 지식만을 요구하는 한국의 고시출신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미국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장의 검증과정을 거쳐 공직후보대열에
오른다.
환경변화에 맞춰 수시로 물갈이가 이어진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지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것이 미국의 관료사회다.
각 부처는 전문가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가 결원이 생기면 이들 중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을 골라 채운다.
의회청문회를 거치는 것은 물론이다.
사관생도 뽑듯 한꺼번에 뽑아 두었다가 전문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성적순으로 배치하는 우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수별로 뭉쳐 집단이기 추구에 바쁜 한국의 "패거리 문화"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장.차관.차관보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낯선 사람이 왔다고 이리 저리 돌리며 애 먹이는 예는 있을 수 없다.
3년 준비한 고시 한번으로 30년이 보장되는 철밥통 시스템은 더더욱
아니다.
외환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올 연초, 차관도입을 위한 뉴욕협상 테이블에
앉은 한국관료들은 "Bullet(만기일시상환)"이라는 단어도 제대로 모르던
비전문가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자리에 참석했던 외국인변호사에게 훈장을 주자는 촌극을
벌인 것도 이들이다.
우리에게도 능력과 참신성을 동시에 구비한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다만 고시제도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이 만들어 놓은 장애물 때문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7일자 ).
돌이켜보면 현정부만큼 좋은 개혁여건속에 출발한 정부도 없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역설의 틀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은행 몇 개를 통폐합하고 재벌들에게 사업을 맞교환하라고 다그친
게 전부라는 것이 일반국민의 인식이다.
개혁의 최우선순위에 올라 있어야 할 정치권과 공직사회의 개혁은 뒷전으로
밀어 놓은 탓이다.
진정한 개혁을 위한 황금기회를 놓친 것이다.
실업자 수는 이미 2백만을 넘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공무원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얘기는 듣기 어렵다.
한국에서 오래 활동한 한 외신기자의 촌평은 귀기울여 들어 볼만하다.
"한국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개혁 주체세력들이 공무원들의 논리에
밀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줏대가 있어야 한다.
확고한 신념과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는 한 기존행정관료들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텃세에 개혁의지는 눈 녹듯 녹아 없어져 버리기 일쑤다.
관료 몇 사람만 담합하면 아무리 개혁성향이 강한 사람도 칼자루를 뺏기게
되어 있는 것이 한국사회다"
이 외신기자의 조언은 계속된다.
"이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하지만 대통령도 관료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이 내놓는 자료와 논리에
현혹되지 않을 수 없게되고 만다.
이것이야 말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다.
불행하게도 현 정부의 칼자루는 이미 기존 공무원들 손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기 전 일이다.
한 내무부관료가 금융인을 찾아와 협조를 구했다.
지방자치제의 성공여부는 지방재정의 확충에 달려있고 그 대안으로
지방채를 집중 연구해보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실력을 과시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 관료의 표정은 전혀 딴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아래 사람들에게 지방채를 잘 아는 전문가로 알려져 버리면 학수고대해
오던 군수자리는 공염불이 되어 버린다.
따분하게 지방채나 붙들고 앉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그는 지방채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또 알아도 아는 체 하지도
않았다.
그가 해야할 일을 금융전문가가 대신 한 것은 물론이다.
그의 처세와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얼마 후 그는 지방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어엿한 일선행정군수로
나간 것이다.
전문성이 오히려 장애가 되는 한국관료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미국이 강한 이유 중 하나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관리한다는
점이다.
경제학자인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말할 것도 없고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또한 대표적인 금융전문가다.
루빈이 하버드 예일 영국의 LSE등 최고의 학부를 거친 것을 사실이지만
이 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뉴욕의 골드만 삭스에서 26년간 잔뼈가 굵은
실무금융전문가라는 점이다.
그는 CGS&H의 변호사이기도 했다.
관념적인 암기식 지식만을 요구하는 한국의 고시출신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미국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장의 검증과정을 거쳐 공직후보대열에
오른다.
환경변화에 맞춰 수시로 물갈이가 이어진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지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것이 미국의 관료사회다.
각 부처는 전문가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가 결원이 생기면 이들 중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을 골라 채운다.
의회청문회를 거치는 것은 물론이다.
사관생도 뽑듯 한꺼번에 뽑아 두었다가 전문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성적순으로 배치하는 우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수별로 뭉쳐 집단이기 추구에 바쁜 한국의 "패거리 문화"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장.차관.차관보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낯선 사람이 왔다고 이리 저리 돌리며 애 먹이는 예는 있을 수 없다.
3년 준비한 고시 한번으로 30년이 보장되는 철밥통 시스템은 더더욱
아니다.
외환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올 연초, 차관도입을 위한 뉴욕협상 테이블에
앉은 한국관료들은 "Bullet(만기일시상환)"이라는 단어도 제대로 모르던
비전문가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자리에 참석했던 외국인변호사에게 훈장을 주자는 촌극을
벌인 것도 이들이다.
우리에게도 능력과 참신성을 동시에 구비한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다만 고시제도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이 만들어 놓은 장애물 때문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