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경영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같은 정의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7일 한국기업의 대표주자인 5대 그룹이 핵심사업 위주로 조직을 개편키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차입을 통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년 20~30%씩 고성장
을 누려왔던 지금까지의 한국식 경영이 전환기를 맞게 됐다는 뜻이다.
한국식 경영이 본격적인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수술의 방향은 핵심사업중심의 수익성 위주 경영이다.
이날 5대 그룹이 3~4개 핵심업중을 중심으로 계열사 숫자를 40~70%까지
줄이기로 합의했다.
사업다각화에서 주력업종 중심으로 경영의 중심축이 옮겨 갔다는 의미다.
"십(Ship:선박)에서 칩(Chip:반도체)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국내 기업들
의 사업다각화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할수 있다.
<> 사업다각화에서 핵심사업 중심으로 =그동안 국내기업처럼 여러사업을
한꺼번에 경영하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우리와 경영관행이 가장 비슷한 일본에서도 그룹의 개념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미쓰비시 등 일본그룹은 브랜드나 사명만 공유할뿐 경영권은 철저히 각
기업이 갖고 있다.
물론 한국식 사업다각화전략이 한국의 경제성공 신화를 창조하는데 큰 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고성장의 엔진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사업다각화의 효능이 이제는 한계에 다달았다.
사업다각화의 기능을 크게 두가지다.
효율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을 통해 위험분산이 가능하거나 사업간
상승(시너지)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경우 자본력을 바탕으로 덩치키우기식 다각화를 추진
하다보니 이제 그룹내에서 모든 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한계가 왔다.
국내기업이 싸워야할 무대가 바뀐 것도 다각화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
배경이다.
그동안 한국기업들의 수출품은 저부가가치 제품이 주를 이뤘다.
따라서 전문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남아, 중국 등 후진국의 추격으로 이제 한국제품의 "저가"
경쟁력은 사라졌다.
경쟁무대를 고급제품으로 높여 선진국과 경쟁을 벌여야 할때가 왔다.
최근 각기업들이 불황속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최고급품을 잇따라 출시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외형위주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이날 합의에서 각 그룹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말이 있다.
그룹의 성격이 "독립적 기업의 연합체"로 바뀔 것이란 점이다.
이는 같은 그룹 계열사라 하더라도 각자가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사업을 벌일때도 "과연 돈을 벌수 있는가"를 우선기준을 삼게
된다.
경영의 바로미터가 자연히 수익성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매출이 아무리 높아도 돈을 남기지 못한다면 기업은 부실의 나락으로 빠져
들기 때문이다.
투자를 하더라도 금리이상의 수익이 보장되는지 철저히 가려서 실행하게
된다.
올들어 유행한 ROA(자산수익률), ROIC(투하자본수익률), EVA(경제적
부가가치) 등의 경영지표는 모두 수익성을 재기 위한 수단이었다.
실제로 현대, 삼성, LG 등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부터 다양한
수익성 지표를 경영평가의 주요 잣대로 도입했다.
<> 전술형에서 전략형 CEO로 =고도성장기에 필요한 CEO 유형은 각 부문간
조정역할과 효율적인 목표달성이 주요 임무인 소위 "전술형 CEO"였다.
기존 전략을 유지,수정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현재의 격변기에는 미래의 변화를
간파하고 상식을 뒤집는 결단을 내릴 "전략형 CEO"가 필요하게 됐다.
이를 위해서는 준비된 CEO가 필요하다.
한국재계에서 미국식의 체계적인 후계자 양성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능력에 의한 과감한 발탁인사, 국적을 불문한 외부영입, 성과에 따른
파격적 보상등이 이를위해 인프라스트럭처다.
삼성물산이 최근 도입한 사업유니트제에도 이런 의도가 담겨 있다.
이사급 유니트장이 전권을 쥐고 담당사업을 운영, CEO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를통해 회사로서는 유능한 CEO 후보를 조기발굴하는 효과도 얻을수 있다.
지난주 단행된 SK그룹 사장단 인사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형 CEO의 대거
발탁이 눈에 띄었다.
MIT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치상 SK건설 사장 등 해외경험이
풍부한 경영자가 중용됐다.
기업성패는 경영자에 달렸다는 점에서 이런 CEO상의 변화는 한국식 경영을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노혜령 기자 hr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