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하창수(38)씨의 전작장편 "그들의 나라"(전4권 책세상) 주인공
하진석이 화원별시에 제출한 그림 제목이다.
한자를 풀이하면 "습지의 물결을 가르며 나아간다"는 뜻이 되겠지만 세
음절을 짧게 발음하면 곧바로 욕설이 된다.
무엇에 대한 도전인가.
소설 "그들의 나라"는 박제된 전통을 뛰어넘고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려다
권력의 음모에 희생된 예술가들의 꿈과 좌절을 그린 작품이다.
시대배경은 조선 말엽.
파격적인 그림을 그리는 10명의 화가가 주인공이다.
대부분 중인 신분이거나 서자 떠돌이 등 소외된 인물이다.
그만큼 굴곡진 과거사와 상처를 안고 있다.
이들은 "농사화회"(생각을 희롱하는 그림모임)를 만들어 독자적인 예술세계
를 추구한다.
그러나 변혁을 용납하지 않는 당대의 권력자들은 사악한 그림이라는 올가미
를 씌워 잔인하게 탄압한다.
작가는 그림을 매개로 한 시대의 장벽을 뛰어넘고자 했던 아웃사이더들을
통해 열정과 좌절의 의미를 일깨운다.
변화와 개혁의 열망을 정치권이 아니라 예술장르에서 빌려와 묘사한 점이
설득력을 더한다.
그는 거대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작고 연약한 인간들의 "작지도 연약하지
도 않은 의지와 열망"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의 화단과 풍속사를 촘촘하게 복원한 것도 눈길을 끈다.
작중 인물 김후억에게는 스스로 한 쪽 눈을 찔렀던 화가 최북의 허무적인
화풍이 투영돼 있다.
이 작품에는 제도와 관습에 발목잡힌 이들의 좌절이 핏빛으로 얼룩져 있지만
행간마다 희망의 소곤거림이 안쓰럽게 남아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