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일대 조선왕조 유적지들은 "답사1번지"다.

종묘와 사직단, 창경궁 경복궁 창덕궁 등 성소와 왕궁들에는 조선의
융성과 쇠락, 비운의 근대사가 겹쳐 있다.

최근 일고 있는 답사붐과 함께 이들 유적을 찾는 발길도 늘고 있다.

<>종묘와 사직단=조선은 개국이후 왕실과 국가에 제례를 올리기 위해
경복궁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단을 열었다.

조선 왕실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종묘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정도로 문화재로서 가치도 높다.

종묘 건물은 정전과 영녕전, 공신당 등으로 구분된다.

정전은 국내 고건축중 길이가 가장 긴 건물로 엄숙하고 장중하다.

왕들의 훙서(사망)에 따라 5차례나 중건돼 길이가 길어졌다.

정전에는 공적이 큰 19위 왕과 관련 왕후들의 위패가, 영녕전에는 16위
왕과 왕후들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조선조 재위 왕이 27명이었고 연산군과 광해군 위패가 제외된 점 등을
고려하면 종묘에 봉안된 10위 왕은 실제 왕이 아니었다.

태조이전의 4왕(목조 익조 탁조 환조)과 사도세자 등 세자책봉을 받았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한 추존왕들이다.

정전과 영녕전의 위패들은 역사가 정통성보다는 권력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증명한다.

왕위를 찬탈한 뒤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태종이나 세조 등의 위패는
정전에 모셔졌지만 파워게임에서 졌던 정종, 단종 등은 영녕전에 안치됐다.

공신당에 배향된 위패 83위도 마찬가지다.

충무공 이순신이나 서애 류성룡 등 명신들의 위패가 없다.

왕의 측근이 우선적으로 선별됐던 것이다.

종묘의 가치는 건물보다 무형문화재인 종묘제례(악)에서 더욱 빛난다.

종묘제례는 왕가의 제례가 6백여년간 계승돼 왔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

이때 연주되는 제례악은 조선시대 악과 가무가 갖춰진 귀중한
음악유산이다.

제례(악)는 옛날엔 1년에 5차례 올려졌지만 오늘날엔 5월 첫째 일요일에만
열린다.

사직단에선 왕이 1년에 3차례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현재 제단만 남아 있고 대례는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창경궁=일제시대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폄하됐지만 뒤늦게 복원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일제는 또 종묘와 창경궁이 붙어 있던 것을 혈맥을 끊기 위해 가운데에
길을 냈다.

그것이 율곡로다.

<>창덕궁=세계문화유산으로 왕궁중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돼 있다.

특히 뒤뜰인 비원은 조선시대 후원양식의 전형이다.

다른 부속건물들도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다래나무 향나무 등 천연기념물도 많다.

<>경복궁=왕궁의 중심이었다.

일제는 궁내 주요 건물들을 헐고 조선총독부를 지었으나 문민정부시절
논란속에 철거됐다.

복원작업의 일환으로 강녕전 등 일부 건물이 최근 다시 지어졌다.

이들 왕궁은 왕이 의식을 행하던 정전, 평상시 집무를 보던 편전, 잠자리에
들던 침전 등으로 구분된다.

명정전(창경궁), 근정전(경복궁), 인정전(창덕궁)등 정전들은 밝고
근면하며 어진 정치를 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또 강녕전(경복궁) 대조전(창덕궁)등 중전이 거처하던 건물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용마루는 용(임금)을 잉태하기 위한 천기를 받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

이처럼 궁궐내 건물들은 모두 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문화가 규모는 작지만 깊은 상징의 고리로 함축돼 있음을 재발견하게
된다.

< 유재혁 기자 yoo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