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앞다투어 집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해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아예 "은행들이 기업에게 돈을 대주는 생산자
금융에서 가계에 돈을 빌려주는 소비자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은행들에 가계대출금리를 2-3%포인트 내리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요란스럽게 가계대출확대와 대출금리인하를 외치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IMF(국제통화기금)체제로 소득이 줄어든 가계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일까.

답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다.

바로 경제정책에 의해서다.

정부는 경기가 곤두박질치자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소비자금융(또는 수요자
금융) 활성화를 내세웠다.

소비자금융은 다른게 아니다.

물건을 만드는 생산자(기업)가 아닌, 물건을 사용하는 소비자(가계)를
대상으로 대출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일반가계대출이나 주택자금대출 등이 그것이다.

할부금융사의 대출, 신용카드대출,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할부구입 등도
넓은 의미의 소비자금융에 속한다.

한은이 발표하는 "가계신용"을 소비자금융으로 보면 된다.

정부가 소비자금융활성화를 들고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인에게 싼 이자의 대출을 많이 해주면 가계는 소비를 늘린다.

소비가 늘어나면 물건이 잘 팔린다.

물건이 팔리면 기업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가동률을 높여야 한다.

자연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기도 회생조짐을 보인다.

이 메카니즘은 생산자금융을 매개로한 방법과 다르다.

생산자금융이란 기업에게 대출을 늘리는 것이다.

기업은 여유돈이 생기면 물건을 많이 만든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에따라 가계소득도 증가하고 씀씀이도 많아진다.

경기도 다시 회생조짐을 나타낸다.

정부가 생산자금융 대신 소비자금융을 택한 것은 생산자금융확대의 경우
경기회생을 장담할수 없는데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했기 때문
이다.

아예 소비자에게 직접 대출을 늘려 경기회생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소비자금융확대가 경기회복을 부추길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기회복은 커녕 경기추락세도 방지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대부분
이다.

IMF로 가뜩이나 소득이 줄어든 상태다.

실업자도 2백만명에 육박한다.

해고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IMF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은행빚을 늘릴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자칫하면 개인이 파산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