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및 아시아자동차 입찰이 유찰됐다.

재입찰에 부친다지만 벌써부터 부작용이 심상치가 않다.

삼성은 유찰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낙찰만을 기다리던 기아 직원들과 협력업체들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느냐"
며 낙담하고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 논란은 더 큰 흠집을 남겼다.

벌써부터 "기아 국제 입찰은 국제 망신"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 왜 유찰됐나 =유찰의 표면적인 이유는 31일 삼성자동차가 부채탕감 등
부대조건을 철회하지 않은데 따른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기아 입찰추진사무국은 이미 지난 28일 저녁 유찰로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국 정태승전무는 "이미 각 업체들이 부대조건을 달아 실격처리했다"고
밝혔다.

사무국은 이에 따라 이미 29일 평가단을 해산시키고 재입찰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종열 관리인은 28일 오후부터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와 정부 고위관계자들
을 만나 이같은 결정을 설명했으나 처음엔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작업에 정부가 먼저 이해를 했고 31일 오후 이 총재와
유찰을 최종 결론지었다.

<> 왜 막판 혼선 빚어졌는가 =부대조건을 달면 실격처리해야 하는지,
불이익을 줘야 하는 것인지가 혼선을 빚게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근영 산은 총재는 "조건을 달면 "중대한 불이익(significant
disadvantage)"를 주겠다고 했지 실격시킨다곤 하진 않았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입찰사무국은 "조건을 달면 반드시 탈락한다는 점을 개별업체 입찰
설명회에서 확실히 설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무국은 이런 이유에서 유찰을 결정하려 했으나 채권단은 "중대한 불이익"
이란 조항만으로 유찰시켜서는 안된다고 반대했다.

또 하나의 혼선은 삼성이 응찰서류에 달아놓은 부대조건에 대한 해석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1일 "시간이 걸린 것은 삼성이 입찰서류에 부대조건
을 달면서 모호한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 대우 포드는 입찰서류 본문에 조건을 달았지만 삼성은 부속
서류에 이 조건을 끼워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도 "처음부터 희망이었을 뿐"이라고 말할 정도다.

<> 입찰 과정에서의 실수 =최대 "악수"는 입찰 진행 과정에서 응찰업체에
조건을 바꿀 것인지를 되물었다는 것.

유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지만 모든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입찰이 끝나도 결코 공개돼서는 안되는 응찰 내역이
낱낱히 흘러나왔다.

가장 중요한 응찰가도 정확하게 공개됐다.

게다가 조건만 철회하면 낙찰 자격이 있는 특정업체에 답변 시한을 연장해
주는 실수도 저질렀다.

<> 공정성과 투명성 결여 =입찰 과정에서의 실수는 곧 공정성과 투명성에
흠집을 낸다.

게다가 입찰과정에 정치권의 개입설이 무수하게 쏟아졌다.

청와대가 나서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지만 입찰 진행중에 모든 정보는 입찰
대행기관이 아닌 외부에서 흘러 나왔다.

30일에도 경제장관들은 류종열 관리인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개입설을 부인하기 어렵다.

<> 후유증 =기아 처리는 어차피 지연될 수밖에 없다.

재입찰 들어가 연말까지는 마무리한다지만 기아처리와 맞물린 모든 문제가
함께 늦어지게 됐다.

재계 구조조정은 핵심산업인 자동차산업을 피해갈 조짐이다.

하루하루를 부도의 공포에서 떨고 있는 협력업체들은 일손을 놓은 상태다.

13개월을 기다렸지만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결국 이러다 부품산업은 고사하고 마는 것이냐는 볼멘 목소리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국가신인도가 엉망이 되고 있다는 점.

외국 투자가들은 현대자동차 사태이후 기아 입찰을 주시해 왔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해서다.

기아처리문제가 또한번 국가신인도에 큰 타격을 미칠 전망이다.

흠집을 어떻게 메워나가야 할지, 고민스러울 뿐이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