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중구 중앙동에있는 범아공사.

소규모 회사들이 난립해있는 화물 검수업계에서는 잘 나가는 회사로
손꼽히는 회사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난 5월4일 부도를 맞았다.

회사는 흑자였으나 모그룹이 무너진데따른 연쇄부도.

3백여명의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회사간부들과 노조는 곧 머리를 맞대고 회사를 살릴 방안을
강구했다.

거래선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자금만 있으면 회사의 정상운영이 가능했다.

또 43년간 한 업종만 해온 회사여서 충분한 노하우도 있었다.

결국 이들은 사주를 설득해 회사를 사들이기로 했다.

인수 자금은 직원들의 퇴직금이었다.

노조대의원 총회 등을 거쳐 직원들의 의사를 물은 결과도 만장일치였다.

이들은 일단 거래미수금중 회수된 3억원을 자본금으로 출자, 지난 7월
범아상사를 설립했다.

김광호부사장이 사장으로 취임, 노조와 상의해 회사를 운영하고있다.

회사가 정상화되면 조만간 경영협의회를 만들어 노사가 공동운영하는 회사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최근 이처럼 기업 부도로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이 회사를 사들여 재기를
꾀하는 사례가 늘고있다.

올해들어 이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한 사례만도 30~4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있다.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부설기관인 노동자기업인수센터(02-718-9127)에는
올해들어 기업인수를 방법을 묻는 근로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있다.

이곳을 통해 노조 또는 근로자들이 기업을 인수한 사례만도 한빛패션
(주)동양인더스트리 대신산업 백상타올 동양아루나 금명실업 등 8개사에
이르며 현재 3~4개사가 인수와 관련, 상담을 하고있다.

노동자기업인수센타 문보경 책임연구원은 "노동자들의 기업인수는
실업억제와 함게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가져올수 있는 효과가 있다"며
"정부도 실업정책의 한 대안으로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인수한 기업 대부분은 규모가 영세한데다 마땅한
담보가 없어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고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또 일부 기업은 법원 경매로 넘어간 생산설비를 임시로 사용하고있는 등
아직 정상적인 생산기반도 갖추지 못하고있다.

거평패션 노조위원장출신인 윤홍렬 한빛패션사장은 "20년을 다니던 회사가
무너지는 것을 그냥 볼수가 없어 뜻이 맞는 노조간부들과 회사를 인수했다"며
"그러나 목돈이 없는 사람들이 퇴직금 등을 털어 만든 회사이다보니
운전자금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말했다.

이들 회사들은 겪고있는 또다른 고통중의 하나는 회사를 운영할수 있는
전문 경영능력의 부족.

근로자들은 전문경영능력을 갖춘 사람을 고용하고 싶어하지만 노조와 경영을
협의하면서 회사를 운영해나갈 전문경영인을 찾기는 쉽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때문에 노동계에서는 근로자가 기업을 인수할 경우, 정부가 외국과 같이
자금지원이나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고 경영상담을 해줄수 있는 제도도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하고있다.

< 김태완 기자 tw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