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사람들은 요즘 유례없는 "미디어 제국주의"에 시달리고 있다.

미식축구영웅 OJ 심슨, 다이애나 왕세자비, 르윈스키 사건은 모두 이같은
미디어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언론의 당연한 의무라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앵글로 색슨 미디어의
선정주의는 양식있는 지구촌 사람들을 혼돈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케네디는 물론 린든 존슨대통령도 비슷한 사건에 휘말려 있었지만 모두
역사의 베일에 가려졌었다.

미테랑 프랑스대통령도 무관하지 않았지만 별 잡음 없이 지냈다.

일본은 아예 허리띠 아래 일은 거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요즘 영미 언론은 분명 다르다.

그들의 막강한 조직과 물량공세에 우리는 다른 대안을 찾을 수가 없다.

지구촌에 거주하는 수십억 인구의 진솔한 이야기들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중국과 한국의 대홍수, 러시아의 모라토리엄도 르윈스키라는 굉음에는
외마디에 불과하다.

귀를 막고 외면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언론들이 너무 심하다 싶지만 르윈스키 사건은 우리 생활과도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깊게 연관돼 있다는 표현이 옳다.

불행하게도 상대가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추락은 월스트리트, 다시말해 국제금융시장과 직결돼 있다.

외환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엔화에다 중국 위안화, 거기다 러시아 루블화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클린턴의 입지가 흔들리게 되면 국제통화기금(IMF)에 미국이 추가로 출자
하려고 하는 1백80억달러가 어떻게 될지도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그 돈이 다 우리에게 오는 것은 아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우리
로서는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클린턴의 위상약화는 의회와의 힘겨루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가 상대적으로 강해지면, 한반도 남북관계의 열쇠를
쥐고 있는 노스 캐롤라이나 출신의 제시 헬름스 의원 등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의 이른바 ''햇볕정책''은 당분간 햇볕을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자체의 권력구조에도 변화를 몰고 올수 있다.

공화당은 클린턴이 물러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앨 고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것이야말로 공화당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 추이는 공화당도 어쩔 수 없는 국면으로 전개되는 조짐이다.

공화당은 9월초로 예정돼 있는 스타검사의 보고서를 받아보고 결정하자며
채찍을 뒤로 감추고 시간을 벌고 있다.

그러나 클린턴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관계가
잘못된(wrong) 것이었다고 시인한 후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19일자 뉴욕타임즈는 이른바 클린턴의 넥타이까지 걸고 나왔다.

"당신이 이 넥타이를 메고 있으면 내가 당신 마음속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알께요"

르윈스키가 클린턴의 50회(1996년) 생일을 맞아 노란색 넥타이를 선물하며
건냈다는 사랑의 메시지였다.

르윈스키 때문에 그만큼 시달렸으면 그녀가 준 넥타이는 쳐다보기도 싫을
만하다.

그러나 르윈스키가 대배심에서 증언하는 지난 8일 클린턴은 그녀가 준
넥타이를 매고 공석에 나타났다.

르윈스키에 대한 일종의 신호가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워터게이트를 빗대 "넥타이 게이트"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생겼다.

벌써 닉슨의 악몽을 의식하고 있는지 모른다.

양봉진 < 워싱턴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