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화공단안으로 들어서면 닥지닥지 붙은 벽보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3블럭 입구 삼일기공 담벼락엔 특히 많이 붙어있다.

"공장 매물" "공장매매 전문" "공장전문 부동산 493-4900"

연쇄부도로 공장매물이 쏟아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이곳엔 지난해초까지만 해도 구인광고로 가득차 있던 곳.

그러나 지금은 구인광고는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기계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던 공장들은 한적하기만 하다.

3블럭 안쪽길을 들어서면 굳게 문잠긴 공장이 하나 보인다.

대성철도신호.

이곳은 높은 기술수준을 요구하는 철도 전산화기기를 만들던 공장.

그러나 지난 4월 일시적 자금난으로 부도를 내 대문엔 하얀 바탕의
아크릴소재 팻말만 댕그라니 매달려 있다.

"이 공장은 금융기관 담보물로서 불법 반출 훼손등을 엄금함"

대성철도신호처럼 금융기관에서 부도 담보물로 잡아놓은 공장은
이 공단안에만 23개사에 이른다.

중소제조업이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시흥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들어 이 지역에서만 1천9백80개 중소기업이
부도에 휘말렸다.

중소제조업체들이 이처럼 매물로 쏟아지는 건 시화공단뿐이 아니다.

수도권지역의 안산공단 남동공단등 전국 29개 국가단지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가는 곳마다 공장매물 벽보만 가득하다.

이들보다 더심각한 곳은 농공단지.

전남 담양 농공단지에 들어서면 지난 수해로 지붕에 물이 새는 공장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러나 어느 공장도 수해복구에 나서지 않는다.

지난연초부터 휴업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고령농공단지등 국내 2백93개 농공단지가운데 이미 휴업 또는 폐업상태에
들어간 중소제조업체는 전체 입주업체의 21.8%인 6백96개사에 이른다.

한기윤 기협중앙회 조사부장은 "농공단지 자체가 서서히 폐허화할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18일 기업은행이 발표한 "중소제조업 동향"에 따르면 지난 5월중
중소제조업의 생산은 지난달보다 4.8%, 작년동기보다는 무려 28.0%나
줄었다.

이는 지난해 11월이후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인 것.

중소제조업이 서서히 벼랑으로 몰리고 있음을 반영했다.

월별로도 지난 1월 작년동기대비 12.6%가 감소한데 이어 2월 13.8%, 3월
18.7%, 4월 24.5% 등으로 감소폭이 갈수록 커졌다.

업종별로는 사무.회계용 기계가 66.1%로 감소폭이 가장 컸다.

또 <>자동차.트레일러 51.6% <>섬유제품 45.8% <>전기.전기변환장치
39.1% <>가구.기타제조업 39.0% <>목재.나무제품 38.8% <>기계.장비
33.4% 등으로 감소했다.

중소기업 공장의 고용사정은 종업원수가 과잉상태라고 응답한 업체가
9.4%로 5개월 연속 과잉고용 상태가 이어졌다.

5월중 종업원수가 감소한 업체는 전체의 26.4%로 고용 감소세가 계속됐다.

자금조달 사정도 곤란하다는 업체의 비중이 42.2%에 달해 여전히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은행이 실시한 "중소제조업 경기전망조사"에서는 3.4분기의 전반적인
경기가 2.4분기에 비해 호전될 것이라고 응답한 업체는 13.8%에 불과한 반면
악화될 것으로 답한 업체는 41.7%에 이르렀다.

박상희 중소기협중앙회회장은 "경기가 이렇게 계속 침체될 경우
중소제조업 분야의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내다봤다.

"계속되는 내수감소와 수해에 하한기까지 겹친 전국 공단 입주업체들은
드디어 허탈한 마음으로 일손을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삼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이같은 기존공장의 폐업을 막을 수
있도록 별도의 자금지원대책을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이치구 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