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경영자들의 의욕을 꺾는데 큰 몫을 한다.

현대자동차 박병재 사장.

그는 지난 4개월동안 울산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대규모 고용조정이 발등의 불이 된 마당에 사장이 서울에 않아 리모컨을
누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근로자들 설득에 밤을 새우기도 수차례.

앓아 누웠어도 몇번은 앓아 누었을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정작 박 사장의 맥을 빠지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정부 관계자들의 들쭉날쭉한 발언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근로자들도 정리해고를 감수해야 한다던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

김대중 대통령도 "부분해고를 피하려다 전체 해고를 당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며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누차 강조해 왔다.

그러나 장관들은 다른 말을 한다.

"30~40%의 대량해고는 사전에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
하겠다"(이기호 노동부 장관)

"일 나누기 등으로 정리해고 규모를 가능한한 줄여 달라"(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

지난 7.21 보선때 인기에 영합한 정치권의 발언은 더욱 가관이었다.

그럴 때마다 박 사장은 근로자들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설득해야 했다.

이규성 재정경제원 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퇴출대상 은행의
대리급 이상 사원은 반드시 고용승계를 해야 한다고 인수은행장들에게
못밖았던 것도 같은 사례다.

입만 열면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정부.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는다며 매질까지 할 태세지만 실행단계에 들어가면
다른 소리를 하니 경영인들은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까.

그런 사례는 많다.

중소기업들이 죽겠다고 난리를 치면 대규모 자금지원을 약속하지만 실제
그 돈을 구경한 곳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BIS 기준을 맞춰야 하는 은행의 창구가 제대로 열려 있을리가 없다.

정부는 은행들에게 여러가지 엄포를 늘어 놓지만 경영자들은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울 뿐이다.

안산에서 자동차부품업체를 경영하는 A사장은 "정부가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침이 마르도록 말하지만 실효를 거둔 정책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사업을 그만두고 싶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금감위의 중소기업 금융애로대책팀을 찾아 하소연도 해볼까 했지만
"해봤자"라는 생각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오히려 은행을 통해 불이익으로 돌아온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빅딜도 있었다가 없어지길 몇차례.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기업 경영인들의 일손이 제대로 잡힐리 없다.

김우중은 지난달 3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
거래조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토로했다.

"새정부 들어 금감위와 공정위 국세청 감사원 검찰 등 5~6개 기간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기관마다 한트럭분에 이른다. 짜증좀 안나게 해달라"

"경영투명성 제고와 국제수준의 회계도입은 정부와 재계간 합의사항인데도
정부가 자꾸 재촉하면 어떻게 하느냐"

"옛날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 회장이 지나쳤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정부에 대한 경영인들의 불만이 그렇게 많다는 증거다.

위기 국면에 경영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는 커녕 오히려 사기를 꺾어
놓아서는 곤란한데 말이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