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Big) 3"

요즈음 미국 거대그룹의 회장들이 오매불망 갈구하는 단어다.

지구촌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세계 3위"안에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3위안에 들어야한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5,10위는 왜 안되는 것일까.

의문에 대한 명료한 대답은 듣기 어렵다.

설득력있는 논리적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3에 끼기 위한 미국 재계지도자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머리싸움은 분명 실존하는 현상이다.

이것이 미국의 기업가정신과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꽃피우게 한 원천인지도
모른다.

이제 지구촌은 한덩어리로 융합돼 가고 있다.

특히 재계의 융합밀도는 나날이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말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큰 것이 아름답다 Big is Beautiful)"는 표현이 더 강렬한
기세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게 현실이다.

미국에서 지난 상반기중 성사된 합병규모는 9천4백5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1년중 성사된 합병규모 9천2백억달러를 넘어서는 규모다.

기업역사상 규모기준으로 10위 안에드는 합병사례중 8건이 지난 상반기중에
발표된 것이다.

총규모 720억달러에 달하는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그룹의 합병을 위시하여
SBC커뮤니케이션스와 아메리테크(620억달러), 내이션스뱅크와 뱅크아메리카
(616억달러) 그리고 지난 월요일 발표된 GTE와 벨어트랜틱의 결합(520억달러)
등이 그것이다.

발표됐다하면 5백억달러가 넘는다.

웬만한 나라의 국민총생산(GNP)보다 크다.

"10억달러를 들여오게 됐다"는게 기사가 되는 우리 경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른바 메가 머저(Mege-merger), 수퍼(super) 딜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하지만 합병규모보다 더 주목을 끄는 대목은 합병열풍이 예전과는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물론이다.

산업영역 또한 성역이 따로 없다.

미국 크라이슬러와 독일 다임러벤츠와의 결합으로 주목을 받은 자동차
부문은 물론 항공 통신 금융 보험 등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증권거래소들간에도 "큰것이 더 좋다(Bigger is better)"며 경쟁적
으로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아메리칸에어(AA)와 브리티시에어의 제휴, 브리티시텔레콤과 AT&T의 결합,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런던과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 그리고 나스닥과
아맥스증권거래소의 제휴 등은 지구촌이 얼마나 큰 것을 지행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들이다.

외국인들이 벌이는 메가딜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연상의 꼬리는 우리가
요즈음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른바 빅딜로 이어진다.

우리의 빅딜은 외국인들처럼 "상대방이 좋아 결혼하지 않고는 못베기겠다"는
식이 결코 아니다.

서로 기업들을 교환(swap)하다 보면 무언가 시너지(synergy)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 주인도 별로 없다.

외국기업들처럼 좋은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라기보다는 "아픈 부분부터
수술하자(loss swap)"는데 관심이 쏠려 있는 시장이라는 지적들이다.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합병은 회장들 둘이서만 얘기해도 끝낼 수 있는
거래들이다.

일일이 회계장부를 들쳐볼 필요도 없고 실사를 할 필요도 없다.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각 회사의 거래가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거래의
기준이 될만한 가격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얼마를 주고 받아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돈을 빌려주려는 외국기업들도 빅딜에 연루된 그룹들은 빅딜이 매듭지어질때
까지 아예 외면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왜 빅딜을 빨리 끝내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수는 있지만 먹기 싫은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

마셔야겠다는 의지가 생길 수 있는 유인제공이 없기 때문이다.

유인을 제공하고 이를 확신시키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세계 3위"안에 들어야겠다는 강한 기업가정신은 그후에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양봉진 < 워싱턴 특파원 biyang@msn.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