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에 사는 주부 유모씨(35)는 얼마전 관할 동사무소를
찾았다.

남편 김모씨(40)의 주민등록을 말소해줄 것을 동사무소에 청구하기
위해서였다.

민방위훈련 소집독촉장이 잇달아 날아왔건만 남편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
그대로 있다간 과태료 30만원만 물리게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실직한 남편은 돈벌러 지방으로 내려간후 지금껏 소식이 끊긴
상태이다.

김씨는 부인의 신청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이달초 주민등록말소자로
전락하게 됐다.

IMF이후 "사회적 미아"인 주민등록말소자가 속출하고있다.

실직 개인파산 회사도산 등으로 인해 거주지를 떠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발생하고있는 현상이다.

일선 동사무소들에 따르면 채무자의 거주지가 일정치않아 빌려준 돈을
못받게 된 채권자 신용카드회사 등이 앞다퉈 관할 동사무소에 채무자의
주민등록 말소신청을 하고있어 그 숫자는 더욱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일단 주민등록이 말소되면 주민등록등초본 인감증명서 주민등록증 등을
발급받을 수 없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채권자들이 채무자의 주민등록 말소 신청을 하는 것은 생활상의 불편을
느낀 채무자들이 다시 주민등록을 신청할 겨우 그 소재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때문이다.

주민등록말소 증가현상은 서민층이 밀집해있는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다.

부유층보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층이하가 IMF직격탄을 받고있어서다.

예컨대 강서구의 경우 지난 4월 한달동안 4백80명의 주민등록을 말소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 2백42명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강서구 관할중 특히 방화3동은 이 기간동안 주민등록말소 사례가 70건을
기록, 지난해 같은기간(16건)보다 4배이상 급증했다.

용산구 용산2가동도 6월말 현재 주민등록말소 건수가 98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66건보다 50%가량 늘어났다.

이 동사무소 주민등록담당인 이혜환씨는 "채권자 등 제3자의 신고외에
배우자나 자녀 등의 가출로 가족이 신고,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경우도
적지않다"며 "경기불황으로 인해 가계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주민등록말소자의
수도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창수(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민등록말소 증가현상은 사회적
신분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뿌리째 포기하려는 행위"라며 "특히 자식에게까지
빈곤을 답습케하는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한편 행정자치부및 서울시에 따르면 올들어 1/4분기까지 경제적 사정 등으로
인해 주거지에서 무단으로 전출해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은 서울시
1만3천89명, 전국적으로는 3만7천명에 이르고 있다.

< 류성 기자 sta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