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은행 퇴출시기가 임박해오면서 내몫만 챙기겠다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이 금융기관과 직원들 사이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부 부실은행 지점장은 거래고객에게 예금을 찾아가라고 권유하는가 하면
일부은행은 퇴출대상으로 확정되지도 않았는데다 자금부족이 예상됨에도
불구, 직원들에게 서둘러 퇴직금을 정산해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모럴해저드가 확산될 경우 자칫 대형 금융사고가 생길지
모른다며 부실은행을 조기에 처리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지방에 근거를 둔 은행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밝힌 한 고객은 26일 본사에
전화를 걸어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해 있는데 지점장이 지금이라도 해약하면
원금을 건질 수 있다며 찾아갈 것을 권유했다"며 사실여부를 문의해 왔다.

부실 은행의 일부 직원들 또한 자신의 예금을 다른 은행으로 옮기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여기에 고객들의 예금인출도 무더기로 일어남에 따라 P&A(자산부채인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몇몇 은행들은 심각한 유동성부족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은행들은 은행간 콜자금거래도 완전히 끊긴 상태여서 CD(양도성예금
증서) RP(환매채) 등을 발행, 우량은행들로부터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CD는 예금자보호대상이며 RP는 채권을 담보로 확보하기 때문에 우량은행에서
그나마 자금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부실은행들은 CD RP를 통해 자금을 차입할 때 최고 연 20%에 해당하는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시장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는 현재 연 14.5% 안팎에서 형성돼있는 콜금리보다 무려 5%포인트이상
높은 수준이다.

부실은행이 금리인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관계자들은 또 퇴출은행 발표가 다가올수록 해당은행으로 지목된 은행
직원들의 근무태도가 이완되고 있다며 금융사고가 속출할까 우려하고 있다.

예상되는 금융사고 유형으론 부정대출, PC뱅킹 등을 이용한 예금불법 인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시말해 담보가치이상으로 부풀려 대출하고 나중에 커미션을 챙기거나
친인척 등에 신용대출을 남발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가하면 평소 신세진 사람들에 지급보증 설정을 풀어주는 사례도 있을
것이란게 금융계의 관측이다.

인수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은행의 직원은 "깨끗하게 P&A되자는 분위기가
강한 편이지만 돈의 유혹에 흔들리는 직원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우량은행 관계자는 "부실은행의 대출영업을 당장에라도 정지
시켜야 한다"며 "부실덩어리만 인수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BIS(국제결제은행)비율 미달은행들은 최근들어 잇따라 퇴직금 중간
정산제를 실시하고 있다.

동남은행은 당초 방침을 번복, 지난 25일 퇴직금 중간정산 신청을 받아
이날 퇴직금을 지급했다.

이에앞서 대동은행은 지난 주말 퇴직금 중간정산을 실시, 직원들로 하여금
은행에서 빌려간 대출금을 갚도록 했다.

대출금이 상환되면 BIS비율은 다소 높아진다.

지난 22일 증자를 돌연 중단한 경기은행 또한 전직원을 대상으로 퇴직금을
부분 정산해 주기도 했다.

또 평화은행은 퇴직금을 중간정산해 주고 1백50억원 증자에 참여하도록
했다.

다른 한편 은행등 금융기관들은 최근 퇴출대상 기업정보를 활용, 명단발표를
앞두고 주식을 처분하는가 하면 대출금도 회수하기도 했다.

또 보험감독원은 지난달 1백여명의 명예퇴직을 실시한 뒤 직원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금융감독기구 통합을 앞두고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등과 직급을 맞추기
위해 3,4급에 해당되는 과장 대리 승진자들을 양산했다.

< 이성태 기자 ste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