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구조조정이 정치바람에 휘말리는가.

정치인들이 출신지역에 연고를 둔 지방은행의 "선처"를 부탁하는가 하면
노동계 등 사회각계의 이해계층이 특정은행을 정리할 경우 가만 있지
않겠다는 엄포까지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22일 금융계에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에 못미치는 12개은행
경영진들이 이번주말 윤곽이 드러날 경영평가위원회의 "평결"에 입김을
행사하기 위해 정치권을 찾아다닌다는 얘기가 널리 퍼졌다.

이들은 경영평가위원회 비밀합숙장소와 평가위원들의 명단을 수소문해
접근을 시도하는 등 D데이가 다가오면서 "장외투쟁"과 "로비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은행들은 공동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최근 지방은행협의회를 갖고 당국에 "배려"를 건의했다.

일부 지방은행은 지역내 국회의원이나 단체들을 움직여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 지방은행의 경우 대주주구성이나 지역정서상 현정권과 강력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외투쟁식 "결의대회"도 등장했다.

동화은행 대주주인 이북5도민 출신들은 지난 18일 국방회관에서 2백여명의
관련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화은행 살리기 결의대회"를 갖고
당국에 이 은행의 "존속"을 요구했다.

민주금융노련소속 대동은행 노동조합도 지난 19일 총파업을 결의하고 고용
승계가 보장되지 않는 강제구조조정을 저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22일부터 본부부서 전직원이 사복근무투쟁을 실시하는 한편
대구.경북지역민들을 대상으로 부당성을 홍보할 계획이다.

동남은행이 지난주말에 연 대토론회에선 은행을 살리기 위해 정치권을
동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집중 제기됐다.

이들은 곧 행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금융계 노동단체도 22일 금감위 앞 시위를 시작으로 전면전에 돌입할
태세다.

시장논리보다는 지역민의 애향심에 호소하는 "광주은행식 증자"도 확산될
조짐이다.

이에대해선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세를 과시하는 일종의 "정치적 발상"
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따른다.

충북은행은 범도민운동 차원의 지역은행살리기를 위해 "충북은행 주식갖기
통장"을 개발, 23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자본금 1천1백억원인 충북은행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1천억원 유상증자를
성공시키자며 지역상공인, 기관 및 시민단체들을 대상으로 증자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앞서 경기은행도 비슷한 증자를 추진했으나 주주피해가 너무 클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중단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이처럼 여러가지 정치논리가 횡행하자 은행구조조정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당초 취지와 달라질 것이라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금감위가 최근 국제업무를 포기하는 은행 등에 대해 BIS비율을
낮춰 적용하겠다고 선회한 것도 정치권 압력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BIS 차등화는 정부보다 정치권에서 먼저 제기됐기 때문이다.

한 금융전문가는 "중앙은행의 지방지점조차 정치권 압력에 굴복해 폐쇄하지
못한 정부가 어떻게 특정지역이나 세력과 연계된 은행을 폐쇄시키겠느냐"고
지적했다.

더욱이 은행의 경영정상화계획, 은행감독원의 자산.부채실사, 회계법인의
경영평가, 경영평가위원회의 평가, 금융감독위원회의 조치 등 복잡하게
얽힌 판정과정이 책임을 분산시키고 정치권 개입을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정치권이 이를 노리고 최근들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틈에 "신관치금융"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금감위는 로비를 차단하기위해 평가위원을 비밀에 부치는 등 공정한 평가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허귀식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