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 '전격 사임'] '국부에서 독재자로'..영욕의 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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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불명예 퇴진한 수하르토(77)는 32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해
온 인물.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의 김일성(46년간)과 쿠바의 카스트로(59년부터
집권중)를 제외하면 최장 집권기록을 세웠다.
그의 집권인생은 한마디로 "영욕의 세월"로 요약된다.
군부등 지지층으로부터는 "국부"로 추앙받았으나 반대파로부터는
"독재자"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불어닥친 외환위기가 결정타로 작용, "피플 파워"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부패한 독재자로 불려졌던 것은 아니다.
1921년 중앙 자바섬의 한 시골에서 출생한 수하르토는 지난43년
네덜란드 식민지시절, 인도네시아 조국해방군에 들어가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기반을 키운 후 65년 당시 중공이 배후조종한 것으로 알려진
공산 쿠테타를 진압하며 군 실세로 떠올랐다.
그 뒤 68년 현 집권당인 직능그룹(골카르당)을 결성,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를 축출하고 대통령직을 인수했다.
그후 올해초까지 연거푸 7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7선 연임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2가지.
우선 가난을 물리치며 경제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집권이후 수하르토는 69년부터 석유 천연가스 원목 주석 금등 천연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 연평균 6-8%대의
고성장을 이끌어냈다.
인도네시아 전문가들은 수하르토 일족의 극심한 부패와 비리도 이같은
경제적 성장때문에 그동안 덮어질 수 있었다고 풀이한다.
"후계자"나 "경쟁자"를 두지 않는 완벽한 독재체제를 고수한 것도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수하르토는 7번 대통령선거를 하는동안 매번 부통령을 바꿨다.
또 자신이 임명하는 대의원으로 대통령을 뽑는 묘한 선출방식을 계속하며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수하르토의 향후 입지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마르코스의 뒤를 밟을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 박수진기자 parks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2일자 ).
온 인물.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의 김일성(46년간)과 쿠바의 카스트로(59년부터
집권중)를 제외하면 최장 집권기록을 세웠다.
그의 집권인생은 한마디로 "영욕의 세월"로 요약된다.
군부등 지지층으로부터는 "국부"로 추앙받았으나 반대파로부터는
"독재자"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불어닥친 외환위기가 결정타로 작용, "피플 파워"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부패한 독재자로 불려졌던 것은 아니다.
1921년 중앙 자바섬의 한 시골에서 출생한 수하르토는 지난43년
네덜란드 식민지시절, 인도네시아 조국해방군에 들어가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기반을 키운 후 65년 당시 중공이 배후조종한 것으로 알려진
공산 쿠테타를 진압하며 군 실세로 떠올랐다.
그 뒤 68년 현 집권당인 직능그룹(골카르당)을 결성,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를 축출하고 대통령직을 인수했다.
그후 올해초까지 연거푸 7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7선 연임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2가지.
우선 가난을 물리치며 경제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집권이후 수하르토는 69년부터 석유 천연가스 원목 주석 금등 천연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 연평균 6-8%대의
고성장을 이끌어냈다.
인도네시아 전문가들은 수하르토 일족의 극심한 부패와 비리도 이같은
경제적 성장때문에 그동안 덮어질 수 있었다고 풀이한다.
"후계자"나 "경쟁자"를 두지 않는 완벽한 독재체제를 고수한 것도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수하르토는 7번 대통령선거를 하는동안 매번 부통령을 바꿨다.
또 자신이 임명하는 대의원으로 대통령을 뽑는 묘한 선출방식을 계속하며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수하르토의 향후 입지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마르코스의 뒤를 밟을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 박수진기자 parks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