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기업어음(CP)은 금융기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신용"을 파는 금융기관이 스스로 "신용"을 저버린 전형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사건은 작년초 한보사태에 이은 대기업의 연쇄부도 등 한국경제의
추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업의 부도로 일부 종금사들가 대출금이 묶이는 등 자금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설상가상 수신고마저 정체에 빠지자 종금사들은 불법마저 마다하지 않는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른바 불법CP 판매에 나서고 만 것.

이들 종금사들은 CP가 실물대신 통장으로 거래된다는 점을 악용해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이중판매, 위.변조 판매, 공CP 판매 등의 수법으로
고객들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유치했다.

결국 거래금융기관을 믿고 찾은 고객들을 속여온 셈이다.

12일 전.현직 대표가 구속된 한솔 신세계 항도 경남종금 등 4개 종금사가
발행한 불법CP 총액은 2조2천80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추가 조사예정인 대한 제일 삼삼 대구종금 등이 매출한 불법CP를
합치면 총 3조원에 달한다.

문제는 종금사 전.현직 대표에 대한 사법처리에도 불구하고 불법CP 변제
책임이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한솔 신세계 등 4개 종금사가 아직 갚지못한 불법CP 잔액이 총1조5천7백억원
규모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종금사는 현재 폐쇄조치된 상태로 각사별 청산재단에서 자산과
부채 정리절차를 밟고있으나 불법CP에 대한 변제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또 매출 CP는 가교종금사인 한아름종금사로의 자산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CP매입자와 발행기업, 종금사 청산재단 사이에 변제를 둘러싼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앞으로 분쟁이 불가피해 보이며 최악의 경우 종금사를 믿고 불법CP를
매입한 개인및 법인고객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종금업계 관계자는 "불법CP는 하나하나의 거래마다 상황이 달라 변제책임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며 민사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김수언 기자 soo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