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강남역 부근.

그럴듯한 건물 1층은 은행차지다.

목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터잡기 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

한때는 건물 1,2층에 서로 다른 은행 지점이 들어설 정도였다.

이런 요지가 "현재"의 싸움이라면 대학교내 점포세우기는 "미래"를 위한
전쟁이다.

한마디로 사람많고 돈많은 곳은 은행의 사활을 좌우하는 전략요충지인 셈.

은행이 잘되고 못되는게 다 요지 선점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싸움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잘된다 싶으면 다른 은행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고 안되는 곳이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따라하기" "배끼기" "행동통일"이 확고부동한
"불패"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97년말 현재 33개 시중 지방 특수은행의 점포는 지점 6천40개, 출장소
1천6백39개 등 총 7천6백79개.

1만명에 1.7개꼴이다.

이는 또 94년말에 5천9백43개에 비해 30%가까이 늘었다.

한해 평균 5백78개의 점포가 생겼다는 얘기다.

하루평균 1.58개다.

여기에 각종 자동화기기 증가분까지 포함하면 점포난립 정도는 더 심하다.

소득수준이 우리보다 4배에 이르는 일본의 은행점포수가 1만6천3백69개
(97년9월3일 기준)로 1만명당 1.53개인 점을 감안할때 국내점포는 밀도면
에서 보통 높은게 아니다.

점포당 예금액을 따져봐도 국내은행의 점포당 평균예금액(잔액기준)은
일본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들은 이런 "출혈경쟁" "제살깎아먹기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영업기법과 전략을 시도했다.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이 5분을 넘으면 즉석에서 1천원을 주는 기업은행의
"대기시간보상제", 차.과장급이상 임직원의 배우자까지 가계대출부문의
영업을 담당토록 하는 하나은행의 "하나도우미제", 각 은행들이 앞다퉈
진출한 전자뱅킹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최근엔 "움직이는 은행"(모빌뱅크) 같은게 거론된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변화들로는 근본적인 과당경쟁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이 올들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를 과감히 줄이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점포줄이기" 경쟁이 시작됐다고나 할까.

너무 급하게 줄이다보니 지점장 한명이 여러 지점을 맡는 "복수지점장"까지
등장했다.

중앙에 모든 업무를 취급하는 모점과 일부 업무만 하는 자점으로 구성되는
모자점포시스템도 등장했다.

은행간에 점포를 사고파는 "점포인수합병(M&A)"도 거론되고 있다.

"남이 버리고 간 점포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금융계격언도 고쳐 이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점포망 재구축으로 인원감축은 불가피하다.

사람도 줄면 점포가 줄고 그러면 다시 사람을 줄인다.

언제까지 줄여야 할까.

한 은행 관계자는 "점포개발팀이 없어질때까지"라고 말했다.

< 허귀식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