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삼성 비서실 40년만에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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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청와대'' ''삼성의 심장'' ''리틀 삼성'' 등으로 통하는 삼성그룹 비서실이
40년만에 해체된다.
이건희회장이 7일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되면 전자
회장실과 구조조정실로 업무를 넘겨주고 모습을 감춘다.
지난 59년 고 이병철 전회장의 지시로 탄생한지 40년만이다.
이 전회장은 삼성의 규모가 날로 커져 자신이 계열사의 일을 직접 챙기기
힘들어지자 분산조직으로 비서실을 만들었다.
처음엔 삼성물산내의 과조직으로 20여명에 불과했다.
초대 실장은 당시 제일모직 총무과장으로 있던 이서구씨.
그는 1년6개월간 비서실을 맡으면서 비서실의 기반을 닦았다.
주로 하는 일은 의전과 은행관리 문서작성 등.
오늘날의 비서실임무에 비하면 그야말로 일상적인 일이었다.
삼성비서실이 막강파워를 갖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다.
경제규모가 급팽창하면서 비서실의 기능은 크게 확대됐다.
70년부터 90년까지 20년간 송세창씨와 소병해씨가 강력한 추진력과 엄격한
관리로 비서실의 기능을 크게 강화시켰다.
특히 소실장은 비서실을 15개팀에 2백50여명의 인력을 거느린 매머드 조직
으로 성장시켰다.
기능도 인사 위주에서 감사 기획 재무 국제금융 경영관리 정보시스템 홍보
등으로 다양해졌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목이 소실장 손에 달렸다
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소실장은 일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자리잡은 전관 코닝 항공 등은 모두
소실장시절 설립됐다.
소실장에 앞서 비서실을 이끌었던 송세창 실장도 업무를 과감하게 추진했다.
그가 재임하던 시절 삼성은 제일합섬 호텔신라 삼성전기 중공업 정밀 등을
설립 또는 인수했다.
비서실은 자율경영을 강조하는 이건희 회장이 새회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기능과 역할이 점차 축소됐다.
정부의 기획실축소정책이 나오면서 91년에는 10개팀 1백30여명 규모로
인력과 조직규모가 줄어들었다.
올들어서는 인사 재무 기획홍보 비서 경영관리 등 5개팀에 인력도 1백명선
으로 다시 감소됐다.
삼성비서실은 삼성그룹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그룹의 투자방향을 정하고 계열사간 조정기능을
비서실이 맡았다.
특히 비서실의 정보수집 능력에 대해서는 정부조직조차 감탄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87년 취임후 "그룹경영의 40%는 비서실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비서실의 역할과 비중은 막강했다.
지난 90년대초 걸프전 발발소식이나 김일성 사망소식은 안기부보다 비서실
이 먼저 알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삼성물산의 해외지사를 통해 입수하는 정보는
삼성그룹 비서실이 적기에 정확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큰 힘이 됐다.
재계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현대의 종합기획실, LG의 회장실, 대우의 회장비서실, SK 경영기획실 등은
모두 삼성 비서실을 준거모델로 삼아 탄생한 참모 조직들이다.
이런저런 점 때문인지 비서실 해체를 앞둔 삼성맨들의 감회는 남다른 것
같다.
< 박주병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6일자 ).
40년만에 해체된다.
이건희회장이 7일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되면 전자
회장실과 구조조정실로 업무를 넘겨주고 모습을 감춘다.
지난 59년 고 이병철 전회장의 지시로 탄생한지 40년만이다.
이 전회장은 삼성의 규모가 날로 커져 자신이 계열사의 일을 직접 챙기기
힘들어지자 분산조직으로 비서실을 만들었다.
처음엔 삼성물산내의 과조직으로 20여명에 불과했다.
초대 실장은 당시 제일모직 총무과장으로 있던 이서구씨.
그는 1년6개월간 비서실을 맡으면서 비서실의 기반을 닦았다.
주로 하는 일은 의전과 은행관리 문서작성 등.
오늘날의 비서실임무에 비하면 그야말로 일상적인 일이었다.
삼성비서실이 막강파워를 갖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다.
경제규모가 급팽창하면서 비서실의 기능은 크게 확대됐다.
70년부터 90년까지 20년간 송세창씨와 소병해씨가 강력한 추진력과 엄격한
관리로 비서실의 기능을 크게 강화시켰다.
특히 소실장은 비서실을 15개팀에 2백50여명의 인력을 거느린 매머드 조직
으로 성장시켰다.
기능도 인사 위주에서 감사 기획 재무 국제금융 경영관리 정보시스템 홍보
등으로 다양해졌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목이 소실장 손에 달렸다
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소실장은 일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자리잡은 전관 코닝 항공 등은 모두
소실장시절 설립됐다.
소실장에 앞서 비서실을 이끌었던 송세창 실장도 업무를 과감하게 추진했다.
그가 재임하던 시절 삼성은 제일합섬 호텔신라 삼성전기 중공업 정밀 등을
설립 또는 인수했다.
비서실은 자율경영을 강조하는 이건희 회장이 새회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기능과 역할이 점차 축소됐다.
정부의 기획실축소정책이 나오면서 91년에는 10개팀 1백30여명 규모로
인력과 조직규모가 줄어들었다.
올들어서는 인사 재무 기획홍보 비서 경영관리 등 5개팀에 인력도 1백명선
으로 다시 감소됐다.
삼성비서실은 삼성그룹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그룹의 투자방향을 정하고 계열사간 조정기능을
비서실이 맡았다.
특히 비서실의 정보수집 능력에 대해서는 정부조직조차 감탄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87년 취임후 "그룹경영의 40%는 비서실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비서실의 역할과 비중은 막강했다.
지난 90년대초 걸프전 발발소식이나 김일성 사망소식은 안기부보다 비서실
이 먼저 알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삼성물산의 해외지사를 통해 입수하는 정보는
삼성그룹 비서실이 적기에 정확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큰 힘이 됐다.
재계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현대의 종합기획실, LG의 회장실, 대우의 회장비서실, SK 경영기획실 등은
모두 삼성 비서실을 준거모델로 삼아 탄생한 참모 조직들이다.
이런저런 점 때문인지 비서실 해체를 앞둔 삼성맨들의 감회는 남다른 것
같다.
< 박주병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