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최저치를 경신한 엔달러환율이 한국의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을
코너로 몰아붙이고 있다.

주가는 장중한때 31포인트나 폭락했고 환율은 단숨에 1천4백원대 중반으로
치솟았다.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을 치고 있다.

일부에선 제2의 외환위기로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암감마저 표출하고
있다.

금융시장을 이처럼 코너로 몰아붙이고 있는 이는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3일 8백11억원어치의 주식을 사고 5백54억원어치를 팔아
2백57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연 3일 주식처분에 나선 것이 꺼림직한데다 주식을 파는 주된 배경이 엔화
약세란 대목이 시장참가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파는 이유는 두가지.

주식매도가 제니스 부실에 따른 한국의 재벌기업에 대한 신뢰도 약화에서
비롯됐지만 엔달러 환율이 불안해지자 주식처분에 가속도를 붙이는 양상이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들은 외국인의 한국주식 처분이 추세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차성훈 자딘플레밍 영업부장은 "일부 외국인은 일본 금융시장이 빅뱅의
과정에 들어섰고 이 과정에서 엔화절하가 가속화되고 동경주가는 폭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주식에 대한 매도공세가 우량주로 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은
한국기업에 대한 실망차원을 넘어 엔화절하가 동남아 경제권에 타격을 줄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증권 관계자들도 일본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이 일제히 추락한데 이어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전망마저 "안정적"에서 "부정적" 바꾼 것은
심상치 않은 일로 보고 있다.

홍성국 대우증권 법인부 차장은 "엔화약세가 장기화되면 결국의 중국
위앤화의 평가절하 시기를 앞당기게 될 것이고 동남아 통화가 일제히 불안해
지게 될 것"이라며 "한국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접근도 원화가 아니라 엔화
추이를 중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자 원화뿐 아니라 안정세를 보이던 태국의 바트화도
이날 폭락했다.

엔화약세 파문이 어디까지 확산될는지에 대해선 아직 가닥이 잡히는 것이
없다.

미국 유럽 등 서방국과의 역학관계도 고려돼야 하고 국제적인 정책변수도
많다.

그러나 엔화약세가 아시아 통화위기로 치닫지 않더라도 한국금융시장이
받는 타격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접근이 엔화가치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외국계증권사 관계자들은 "엔화가 안정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원화환율
안정에 상관없이 외국계자금은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 허정구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