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복수"

미국PC업계에서 요즘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다.

무어는 인텔의 창립자인 골든 무어를 지칭한다.

그는 스스로 예견한 제품사이클로 시장을 석권한 반도체업계의 거장이다.

반도체의 신제품은 18개월을 주기로 나오며 그때마다 집적도가 배이상으로
증가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다.

인텔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컴퓨터 주기억장치인 286, 386, 486, 586 등을
잇달아 상품화해 세계 최대의 반도체메이커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이 가진 위력은 지난 96년부터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개선해 PC의
주기억장치를 바꾸지 않고도 잘 돌아가게 만들었다.

때문에 인텔의 올 1.4분기 이익은 1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0년만에 처음이다.

문제는 인텔에만 그치지 않는다.

"무어의 법칙"은 그동안 PC업계를 먹여살렸다.

인텔이 새로운 주기억장치를 내놓을 때 마다 PC업계는 경쟁적으로 이를
채용했다.

소비자들은 쓰던 PC를 버리고 새것으로 구입했다.

그러나 재작년부터 상황이 돌변했다.

인텔이 686급으로 펜티엄프로를 내놓았지만 실패작이 된 것.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윈도95라는 운영체계는 586에서도 잘돌아간다.

다른 소프트웨어 지원기능도 뛰어나다.

비싼 돈을 주고 PC를 새로 사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PC메이커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재고물량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세계최대의 PC메이커인 컴팩은 현재 재고물량이 적정량의 4배가 넘는
8주일치나 쌓여있다.

휴렛패커드도 마찬가지다.

결국 PC메이커가 할 수있는 일이란 가격경쟁뿐이다.

하나라도 더 팔아 재고를 줄여야할 상황이다.

컴팩이 PC를 사면 모니터도 끼워준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은 것은
이들이 벼랑끝에 몰렸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같은 불황이 장기화될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날 게 분명하다.

PC를 최대 수요처로 삼는 메모리반도체업계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다.

세계 PC업계와 반도체업계는 그래서 무어의 배신에 필적할만한 새로운
법칙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 조주현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