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한국의 경제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또 한국의 사례에서 어떤 교훈을 얻으려하고 있을까.

최근 중국의 한 연구원이 쓴 연구논문은 한국경제위기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을 보여준다.

"하루 추위에 얼음이 석자나 얼지는 못한다"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을 연구하고 있는 천화 중국공상은행 국제부연구원은
최근 공산당 기관지에 ''한국 대기업의 연쇄도산이 주는 계시''라는 논문을
쓰면서 이런 고사성어로 시작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연쇄도산에까지 이른데는 유래가 깊으며 한두가지
잘못된 결과가 아니다"는 지적이다.

잘못된 점들이 계속 누적됐고 누적된 문제들이 고쳐지지 않아 한국경제가
위기상황을 맞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중국이 대기업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여러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며 금융체제, 정부와 기업간의 관계, 기업정책의 방향 등을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반면교사로 삼은 셈이다.

천 연구원은 우선 은행대출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한국내 은행의 대출심사는 매우 흐리멍텅하다"고 혹평했다.

대기업이 대출을 신청할 경우 은행은 현장조사도 없이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악성종양"이라고 표현하고, 그 원인은 정부와 기업의
밀착관계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 연구원은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 아들이
비리사건에 연루된 것은 정부와 기업의 밀착관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면서 "중국은 금융시스템과 기업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

천 연구원은 기업의 경제적 규모는 시장원리에 맡겨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대기업 육성전략은 현명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기업 규모는
정부가 결정할 일이 아니고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그냥 넘긴
게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천 연구원은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도 한국사례에서 받은 교훈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일부 대기업이 파산한 것은 바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상응한 발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천연구원은 시중자금과 각종 지원이 대기업에 치중돼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했으며 이로인해 경제 전체가 활력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천연구원은 또 중국이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정부의 거시경제
통제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시콜콜한 행정규제는 없애는 대신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정부가
중요한 부분의 "키잡이"노릇을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한국정부는 구조조정을 강화한다는 조건부로
IMF로부터 5백50억달러를 지원받았다"며 이는 정부의 거시조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말한다.

이같은 천 연구원의 한국경제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중국정부의
공통적인 견해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당국이 한국의 위기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베이징=김영근 특파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