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자산매각과 자본금확충을 위한 각종제도를 먼저 정비해주지 않으면
내년까지 부채비율을 2백%로 낮추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공기업을 외국기업에 우선 매각해 금융시장을 조기에
안정시켜 줄 것을 촉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7일 오전 기업구조조정 실무대책반 회의를 갖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정해 기업을 몰아붙일 경우 기업의 자금조달
경색이 심화되는 등 부작용만 크다며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도 이날 아침 은행감독원이 주최한 조찬모임에
참석해 재계의 입장을 전달했다.

전경련은 이날 회의에서 증시수요기반 확충을 위해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율을 확대하고 기업의 주식발행 원활화를 위해 발행가에 대한 제한을
철폐할것을 촉구했다.

또 기업분할제도를 도입하고 부동산 매각에 따른 특별부가가치세
감면, 사후관리요건완화, 비업무용 부동산의 특별부가세 감면등을
요구했다.

또 부채비율 2백% 이하 축소조치를 업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하고
급진적인 정책 추진을 지양해 달라고 주문했다.

재계의 이같은 방침은 그러나 은행을 통한 강력한 구조조정 방침을
굳힌 금융당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앞으로 상당한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계가 금융당국의 지침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은행감독원의
이번 지침이 현실적으로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경련 이병욱 기업경영팀장은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물론
계열사나 부동산을 매각하는 것도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30대그룹이 내년까지 부채비율을 2백%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96년말
기준으로 1백72조의 부채를 상환하거나 86조원 어치의 주식을 신규로
발행해야 한다.

부동산 매각의 경우도 30대그룹의 매각대상 부동산이 17조원 규모이지만
인수자가 없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성업공사와 토지공사도 인수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 매각도 다를 게 없다.

매물만 쌓여가고 있다.

2백% 비율 준수를 위해 필요한 자기자본 86조원을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하는 방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해 유상증자 및 기업공개 규모가 3조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면
그렇다.

지난해 말 이후 증시기반이 더욱 취약해진 현상태에서는 더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정적으로 나온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금융권 부채만 갚는다고 부채비율을 낮출 수 없다는 것이다.

30대그룹의 총부채 가운데 은행부채비율은 11.9%.제2금융권을 합해도
40%가 채 못된다.

나머지 60%는 기업간 신용, 부채성충당금이라는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외상매입금 미지급어음 퇴직금충당금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즉 금융권의 빚을 다 갚아도 지금의 절반 이하로 부채비율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적 관행을 무시하고 무조건 "선진국 수준"을 맞추라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잦은 정책 변경도 기업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주요인이다.

이날 참석자들이 정부에 대고 공기업을 먼저 매각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을 보면 그렇다.

모그룹 관계자는 "최근 외국 기업들이 계약 막바지에 정부 정책을 믿을 수
없다고 꼬리를 뺀다"며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는 건 정부"라고 비난했다.

기업들의 반발이 정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권영설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