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으로 시작해 안도하며 끝났다. 조정인지 회복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지난 11일부터 엿새간 이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품 거래시장 아트바젤에 참여한 갤러리 딜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말이다. 스위스에서 열린 ‘아트바젤 바젤 2024’는 개막 직전까지 폭풍전야였다. 40개국의 285개 화랑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술계의 슈퍼볼’로 불리는 아트바젤마저 흥행하지 못하면 앞으로 10년은 답이 없다”는 분위기였다. 지난달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경매회사의 현대미술 판매량이 이전 시즌보다 22%나 줄었다는 결과까지 나오면서 시장이 회복세를 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날개 돋친 듯 팔린 초고가 그림하지만 기우였다. 막상 문을 열어보니 열기가 만만치 않았다. VIP 대기줄은 입장까지 한 시간이 넘을 정도로 늘어섰다. 개막 두 시간 안에 100억원 이상 대작이 줄줄이 팔려나갔다. 일반 공개가 시작된 13일부터는 행사장 일대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노아 호로비츠 아트바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미술시장 매출이 전년 대비 4% 감소한 650억달러(약 90조원)에 그쳤지만 아트페어를 방문해 작품을 자신이 직접 보고 구입하려는 컬렉터는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대마불사와 승자독식. 이번 아트바젤은 21세기 자본 시장을 움직여온 두 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하우저&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리만 머핀, 화이트큐브, 가고시안 등 세계적인 ‘블루칩 갤러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반신반의하며 출품한 ‘여덟 자리 딜’(1000만달러 이상의 그림)이 줄줄이 팔리면서다.미국 뉴욕 기반의 데이비드 즈워너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이른바 ‘국민 연애시’로 불리는 ‘즐거운 편지’의 한 구절이다. 황동규 시인(86)은 이 시를 고교 재학 시절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인을 그리며 썼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1958년 이 시를 비롯해 ‘시월’ ‘동백나무’ 등을 서정주가 <현대문학>에 추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황동규는 1938년 평안남도 숙천에서 소설가 황순원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즐거운 편지’를 비롯해 ‘시월’ 등 그의 초기 시 세계엔 그리움이나 적막하고 쓸쓸한 내면 풍경을 담은 시가 주를 이뤘다. 1970년대 들어선 꿈과 이상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시적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등은 암시를 통해 사회문제를 한 차원 높게 형상화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황동규는 최근 18번째 시집 <봄비를 맞다>를 발표했다.신연수 기자
“아빠는 따뜻한 양피 잠바를 입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괜찮아. 태현이도, 태성이도 기뻐해줘.”1954년,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 한국에 사는 어느 아빠가 일본의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빠는 잘 지내고 있다며 안심시키고자 하는 마음과, 보고 싶은 그리움을 눌러 담은 편지. 글을 쓴 주인공은 황소 그림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국민 화가’ 이중섭(1916~1956)이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100여 통의 엽서와 편지가 되어 동해를 넘어갔다. 이중섭은 1953년 일본에서 며칠 만난 것을 끝으로 다시는 가족과 재회하지 못했지만 엽서와 편지들은 남았다.서울 종로구 석파정 서울미술관에 이중섭의 편지와 엽서 9점이 전시됐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시회에서다. 편지들은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집을 가족들이 정리하다 발견됐다.전시작 중에는 이번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편지도 있다. 이중섭이 장남 태현에게 보낸 글 편지 한 장과 삽화가 그려진 편지 두 장이다. 모두 일본에 떨어져 사는 아내와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았다. 이중섭의 편지들 가운데 그림이 그려진 편지는 드물다. 이번 전시에서는 편지지 위에 액자를 씌우지 않고 관객이 편지 그대로를 볼 수 있게끔 소개됐다.편지글에는 아빠는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양피 점퍼를 입고 그림을 그린다며 아들을 안심시키는 내용이 담겼다. 아들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애절한 마음도 볼 수 있다. 공개된 두 개의 그림 편지 중 하나에서는 이중섭이 글에 쓴 대로 양피 점퍼를 입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나와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아빠 힘내요, 힘내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