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 리스사는 지난달말 한국은행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한은이 외화자산운용 규정을 고쳐 부도난 기업에 나간 리스자금의 상환
시기를 1년간 유예해준 것이다.

대신 상환금리는 5%포인트 더 물어야 한다.

기업 연쇄도산으로 한은의 조기상환 압박에 시달려온 리스사에 생명연장
주사를 놓은 셈이다.

리스사들이 사상최악의 경영난을 겪게 된 것은 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리스료를 고스란히 떼이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외국에서 단기로 빌린 차입금 독촉장은 연일 날라오고 있다.

환차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3중고에 시달리는 리스사는 이미 마비상태에 빠졌다.

한보철강에 1조2천억원의 리스를 한 한일 등 22개 리스사는 작년 1월 이후
한 푼의 리스료도 받지 못했다.

전국 25개 리스사의 부실채권은 지난 96년 2천9백43억원에서 작년 9월
2조2천3백46억원으로 급증했다.

최근엔 정상기업도 리스료를 연체하곤 한다.

연체 이자율(17~24%)보다 시중금리가 더 높아서다.

부실채권 급증으로 리스사의 신용도가 추락하면서 돈빌리기가 어려워졌다.

원화조달창구인 리스채시장이 마비됐다.

지난 2월 리스채는 1천45억원 발행되는데 그쳤다.

전년동기(5천3백15억원)보다 80% 감소한 것이다.

"은행과 투신이 리스채 만기분만 상환받고 재인수를 꺼리고 있다"(동남리스
김중림 부장)는 것이다.

선발리스사의 리스채 상환분만 매달 사별로 4백~5백억원에 이른다.

이젠 콜시장까지 기웃거려야 할 신세가 됐다.

외화차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작년초 이후 해외 직접차입에 성공한 곳은 산업리스(8천6백만달러)와
개발리스(2천5백만달러)뿐이다.

25개 리스사가 올해 갚아야 할 해외직접 차입금은 4억4천만달러.

"막막합니다. 모은행이 어떻게 해주겠지요"(D리스 자금담당자).

리스사들은 어려울때면 모은행에 기대곤 했다.

신보를 제외한 24개사가 은행의 자회사이다.

하지만 은행도 경영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떨어뜨리는 자회사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나몰라라 할수도 없다.

리스사의 부도는 모은행의 재무구조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중앙리스가 지난 1월13일 부도를 냈다.

다음날 모은행(충북은행)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25개 리스사의 외화채무 1백80억달러중 62%인 1백10억달러는 국내 은행이
대출해 줬다.

물론 자회사 부도로 인한 신용도 추락도 모은행엔 부담이다.

리스사의 경영난은 내부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리스사는 은행 퇴임임원의 배출 창구였다.

경영진의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1-3년만기 자금을 빌려다가 5~7년짜리 리스를 해온 것이 단적인 예다.

환차손에 노출된 것도 같은 경우다.

환율급등으로 인한 환차손은 회사마다 2천만~2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
된다.

리스사의 경영난은 리스시장을 마비시키고 있다.

리스업계는 지난 1월 1백40억원의 리스(계약기준)를 했다.

전년동기보다 97.9% 감소한 것으로 올해초 리스영업에 들어간 LG카드의
실적(2백50억원)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리스 중단은 IMF위기 극복에 앞장서는 유망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충북 음성에 세계최대의 갈륨비소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C사는 공장이
완공될 10월께 설비를 설치할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리스사들이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예금기관이 아닌 리스사에 재정지원을 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소리없이 죽어가는 리스사.

그 파장은 실물경제와 은행권을 붕괴시킬 만큼 크다.

< 오광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