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도와서는 안된다" "반드시 도와야 한다"

미국 반도체 관련업계가 IMF 파고에 휩쓸린 한국 반도체업계를 놓고
두 패로 갈려 있다.

더욱이 이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돕지 말아야 한다는 진영의 멤버는 반도체제조업계.

한국 반도체업계가 망가지면 곧 이득을 보게되는 쪽이다.

이 진영의 대변인은 미국 유일의 메모리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스티브 애플턴 회장이다.

한국업계를 "공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는 IMF가 터지기 이전부터
반덤핑제소를 일삼는등 한국 반도체업계를 수시로 공격해왔다.

특히 한국업계가 IMF한파에 휩싸이자 미국 정부와 의회 등 곳곳을
뛰어다니며 "한국업체들을 도와서는 안된다"며 열변을 서슴지않고 있다.

그는 지난달말 미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의 네거티브한 유동성 흐름은 이들이 새로운 자금조달없이는
채무변제가 어렵다는 뜻"이라며 "결코 IMF협조융자가 이들에 흘러들어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애플턴 회장은 급기야 자신이 이사로 있는 미국반도체제조협회(SIA)까지
움직였다.

SIA는 최근 애플턴 회장과 주장을 같이하는 조지 스칼라이스 회장명의의
공문을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등 행정부 곳곳에 보내고 강력한 로비에
나서고 있다.

반면 꼭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거세다.

이 진영의 멤버는 반도체장비업계.지난해만도 5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장비를 사준 한국업체들이 망하면 자신들의 앞날도 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 한국업체들이 장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자금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제 반도체장비및 재료협회(SEMI)는 한국반도체업체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모색하기 위해 전세계 회원업체들로 실무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실무위원회에는 ABN암로 같은 투자은행과 CE캐피털 같은 리스회사를
비롯해 노벨루스시스템 램리서치 KLA텐커 등 반도체장비업체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추가 회원도 참여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한국 반도체업계가 부실화되면 중장기적으로 시장에 더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며 자금난을 겪고 있는 한국업체들을 위해 단기는 물론
중기자금까지 파이낸싱해주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