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재판"이 처음 열린다.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이규홍부장판사)는 8일 한보철강의 손근석
관리인이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에 대한 사정재판을 신청, 본격적인 법률
검토작업에 착수했으며 금명간 한보철강 관계자들을 법원에 소환, 심문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사정재판이란 기업이 구사주의 부실경영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절차로 회사정리법 72조에 규정돼있으나 법제정 이후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아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재판개최여부 이해당사자심문 판결선고 등 모든 재판절차를 법정관리
담당재판부가 주관하는 특이한 재판으로 판결이 선고되면 일반 민사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이렇게 되면 구사주는 부실경영에 대한 직접적인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에서 현재 법정관리중인 대기업의 경영진에 대해서도 유사한
신청이 잇따르는 등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손근석 한보철강 관리인은 "정총회장이 아들에 대한 증여세 7백90억여원을
체납하고 회사보증으로 노태우 전대통령으로부터 5백90억여원을 빌리는 등
7백80억여원의 채무를 지게했다"고 밝혔다.
또 "이로 인해 발생한 1천5백70억여원의 빚때문에 조달청에 납품키로 한
20만톤의 철강제품 납품대금을 압류당했고 국세청으로부터 환급받아야 할
90억여원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회사정상화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며
"회사자금을 개인용도로 유용한 정총회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정심판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변호사는 "그동안 법원은 회사를 법정관리까지 몰고온 구사주에
대해서 경영권을 박탈하는 소극적인 조치만을 취해왔다"며 "사정재판이
이뤄지면 "기업이 망해도 기업주는 부자로 살아남는다"는 왜곡된 기업경영
풍토가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김인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