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골조로 지어진 4백여평의 공장안은 배전반, 제어반 등 중전기제품을
조립하는 전동드라이버, 망치질소리가 숨가쁘게 울린다.
지난해 1월 나라경제를 흔들었던 한보철강 부도의 직격탄을 맞은 회사
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한보가 부도났을 때만해도 전혀 살아날 가망이 없던 세흥의 회생은 정효순
사장이 그동안 쌓아온 신용과 노사간 협력이 결정적인 밑바탕이 됐다.
회사진로가 막연했던 지난 2월1일 정사장은 60여개 협력사를 서울 용두동
본사로 불러 사실을 털어놨다.
"모두가 사는 길을 찾읍시다.
한보어음 등으로 40억원의 빚방석에 앉았지만 힘을 합친다면
가능합니다..."
정사장은 협력사들이 한보어음으로 은행에 긴급 팩토링대출을 받고 2월달에
세흥으로 청구할 어음결제는 3월로 늦춰주면 급한 불을 끌 수 있다고 설득
했다.
꼭 결제받아야 할 업체는 세흥구좌에 금액의 30%를 현금으로 지원해 줄
것을 거꾸로 요청했다.
현대, LG와 함께 한보공장 전력설비를 맡았던 세흥의 기술력, 그리고 빚을
하루도 연체하지 않았던 신용으로 결국 협력사의 동의를 얻어냈다.
이후 부동산매각, 남양주 공장을 담보로 한 은행대출 등으로 약속한 5월
까지 어음을 막아냈다.
세흥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업체에는 자신에 가득찬 호소문을 보내 전보다
많은 일감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근로자들도 올해 임금을 동결하고 상여금을 없애는데 협력하는 한편
인원의 대폭감축을 군말없이 견뎌내 정사장의 어깨를 한결 홀가분하게
해주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였다.
험난하기만 한 긴터널을 빠져 나온 세흥은 비로소 도약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요즘은 서서히 일감이 밀리면서 지난해 매출액 30억원보다 50%늘어난
45억원어치의 주문을 확보, 26명의 근로자가 연일 야근과 휴일특근으로
세밑을 밝히고 있다.
IMF한파속에서도 제품주문이 계속 늘어나면서 내년도 매출규모는 50억원을
넘을 것으로 회사측은 자신하고 있다.
매출의 80%를 한보철강에 의존하던 회사가 한보부도의 광풍앞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내일을 기약하게 되자 업계에서도 놀라운 눈으로 세흥의
회생을 주시하고 있다.
"아직 넘어야할 산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빚도 적지 않고 어음할인도 아직 꽁꽁 묶여 있어요.
하지만 서로 부축해주는 협력관계가 지속되는한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이란
없어요"
누구보다 고통스런 한해를 보냈던 정사장의 앞에는 희망찬 98년의 햇살이
비추고 있다.
<남양주=김희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