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더니 마침내 우리 경제가 부도가 나고 말았다.

IMF의 경제신탁통치를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자존심은 접어두더라도 저성장과 고실업으로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 가입했다고 해서 좋아했던
국민들도 돌변한 사태에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경제난국 시대에 어떤 소비형태가 바람직한가.

소비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한국소비자보호원의 허신행(56)
원장을 집무실에서 만나봤다.

< 대담 = 장유택 사회1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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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우리나라와 IMF간의 양해각서 서명일을 일부에서는 "제2의
국치일"로 묘사할 만큼 우리의 경제현실은 심각합니다.

이같은 상황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의 경제위기는 경제전체의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거죠.

그동안 경제운용의 리더십은 "정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제조업 금융산업 유통업 등 모든 업체의 사장이 "정부"였다고
할수 있죠.

그러나 각 산업이 정부의 지시를 따라가는 이러한 시스템은 WTO시대 이후
자유시장체제 아래서는 비효율을 유발하고 기업자립능력의 배양을
저해했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조절과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서 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비자들도 95년 WTO시대가 열리면서부터 자세를 고쳐 소비자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했습니다.

건전한 소비문화를 창출하지 못하고 보신-도박 관광이나 무분별한
유학,과소비 등을 일삼은 것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경제난 타개를 위해 솔선해야 하지만 마치 모든 책임이 국민
(소비자)에게 있는 것처럼 비난을 받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물론입니다.

생산과 소비측면 모두의 책임입니다.

소비자라도 나서서 생산측면의 문제점을 줄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라고나
할까요.

굳이 현재의 경제난에 대한 책임을 묻자면 주연은 정부와 재벌을 위시한
기업들이고 소비자는 조연쯤 되겠죠"

-평상시 소비자시대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고 최근에는 "21세기 소비자
주권의 시대"를 선언하신 걸로 아는데요.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상품이 잘 팔립니다.

이를 공급자 중심의 사회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상으로 보면 지난 5천년 동안이 생산자(공급자)중심의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WTO체제에 돌입한 95년부터 공급자시대는 끝났습니다.

외국의 상품과 서비스가 들어오면서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지고 가격도
하락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생산(공급자)이 소비자의 구매방향을 따라가게 됩니다.

한 예로 외제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해당 국내산업은 축소됩니다.

한때 관광지로 가장 각광받던 제주도도 해외여행이 늘어나면서 관광객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것이 소비자시대와 소비자주권의 개념입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사느냐,또는 어떤 것을 선호하느냐가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IMF시대에 소비자에게 가장 먼저 닥칠 문제는 물가상승이라고 예견됩니다.

내년도 경제성장률 3%와 물가상승률 5%를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환율급등의
여파는 당장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리는 그동안 경제성장과정에서 능력 이상의 소비를 해왔습니다.

웃돈소비생활이라고나 할까요.

소비수준을 현재의 3분의1 정도로 줄여야 합니다.

1만달러 소득을 자랑하면서 소비는 2만~3만달러 수준으로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임금 금리 땅값 의식주 소비 해외여행 수입 등 모든 분야에서 하향조정이
절실합니다.

국부적인 치료만으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경제악화가 소비자 파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과다한 소비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미래의 소득까지
앞당겨 사용했다면 파산은 불을보듯 뻔한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초긴축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임금삭감과 감원 계획을 발표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이 우리 소비자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감원이라는 조치는 최악의 경우에 사용하는 마지막 카드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처럼 임금을 낮추고 근무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실업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과다한 실업은 그 자체가 새로운 출발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국내 실세금리가 22%선으로 상승함에 따라 국내 유통업체들은 5%대로
자금을 조달하는 다국적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이 불가능해지리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국내산업과 소비자 보호라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통시장과 함께 자본시장도 개방됨에 따라 우리 기업들도 해외금융을
유치할수 있게 된만큼 금리에 대한 부담은 어느정도 덜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오랜 믿음을 바탕으로 믿을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유통산업의 특성상
가격이 싸다고 모두 그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통위기는 끈끈한 정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과 상호신뢰
구축으로 해결할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또 외국업체의 국내 진출은 체질개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됩니다.

경쟁자의 등장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산업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합니다.

결국 위기극복의 요체는 우리의 자세와 정신입니다"

-지난 3일 제2회 소비자의 날을 맞아 건전한 혼례문화 실천결의문을
발표한 것으로 아는데 이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

"혼례문화 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전반에 걸친 건전소비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소비자시대에는 산업이 소비형태를 따라오기
때문에 건전한 소비가 건전한 산업을 육성하는 토대가 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비가 이뤄져야 합니다.

놀이문화만 하더라도 가족화합과 의식수준 향상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두번째로는 미래지향적인 소비가 이뤄져야 합니다.

앞을 내다보는 구매를 해야겠습니다.

세번째로는 물건을 사는 것 자체에서 만족을 얻기보다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거시적인 소비안목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결혼문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혼례비는 7천5백만원에
달합니다.

국가전체로는 2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옵니다.

이래서는 결혼 당사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설수 없습니다.

건전혼례문화 캠페인의 목적은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