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선자의 23일 일정은 모두 "경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제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해 "경제가 파탄한 정권"을 인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이다.

김 당선자는 이에따라 당초 안보 국방분야 업무보고를 받을 계획이었으나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과 유종하 외무부장관의 업무보고로 바꿨다.

뿐만아니라 22일에 이어 임창열 경제부총리를 다시 국회 국민회의 총재실로
불러 지속적으로 외환사정을 체크하는등 잠시도 외환위기의 추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김 당선자는 아침 6시 일산자택에서 잠을 깨자마자 "비상경제대책위 12인"
첫 회의에 참석하려던 김원길 정책위의장부터 찾았다.

이날 저녁 이한할 예정인 립튼 미국 재무차관으로 부터의 소식이 궁금해서
이다.

본국과 시시각각 연락을 취하고 있는 립튼차관과 국제통화기금(IMF)측을
납득시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김 당선자는 오전9시30분경 국회에 들어온 뒤에도 모든 일정을 경제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의 업무보고때 "IMF 지원을 받고있는 상황에서 벋어나기
위해서는 안정.개방.투명성 세가지가 대단히 중요하다"며 외환위기의 실체도
투명성부족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

김 당선자는 이어 11시부터 외무부장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외무부가 경제외교로 업무를 전환하라"고 경제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웠다.

점심시간에는 임부총리와 단둘이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외환위기
극복대책을 논의했다.

김 당선자는 오후4시를 전후해서는 유종근 전북지사를 총재실로 불러
외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게 했다.

유 지사는 상대가 누군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나 립튼차관이었던 확인됐다.

김 당선자는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알 왈리드 사우디 왕자와 오구라
가즈오 주한일본대사의 방문을 받고 "세일즈외교"를 벌였다.

김 당선자의 투자요청에 왈리드왕자가 "당선자와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돕겠다"고 흔쾌히 답하자 김당선자는 "왈리드왕자와 같은 국제적 사업가가
한국에 투자하면 다른 외국투자가들도 따라 오게 될것"이라며 고무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 당선자는 또 가즈오 일본대사에게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이
적극적으로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날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면 체면도 자존심도 모두 벗어던지고
실질적인 "경제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다.

김 당선자는 또 국가의 대외신인도를 높이는데 모든 힘을 다 모으기로
하고 인사와 정부조직개편 등에 대한 구상은 경제위기를 극복한 뒤 착수키로
했다.

당에서는 경제위기의 실상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기업의 금융
위기상황 파악에 나섰다.

김 당선자는 이날 정동영대변인을 통해 "현재의 심각한 위기상황을 극복
하기 위한 핵심과제는 국제적 신용의 회복"이라며 "모든 수단을 다해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끌어올리는데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발등에 떨어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당선자의 하루일정에서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파산한 정권을 인수하게
된다"는 절박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 김수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