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묻은 마음 헹구러
겨울, 북한강에 갔었네
등이 허연 강물에 마음 담근 채
갈대들의 허리를 어루만지는
남루한 바람 한 잎 만났네
저만큼 밤 하늘에 핀 별 하나가
강물 속에 집을 짓는 것을 보았네
따뜻한 등불이 흐를 것 같은
그리운 사랑의 집 한 채
양구를 지나온 춘천행 막차 속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몇 개 흔들리고
리어카를 끌고 별집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네
코 흘리며 아버지를 따라가는
새끼별의 시린 눈물도 훔쳤네
겨울, 북한강에 가서
강물 속에 집을 짓고 노는
비늘 푸른 잉어 한 마리 보았네

시집 "불안하다, 서 있는 것들"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