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때문에 화병에라도 걸릴 판이다.

화풀이라도 제대로 할수 있으면 좋으련만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무능한 정부를 향해 울분을 토해 보지만 끓어오르는 화가 식기는 커녕
점점 열이 오른다.

이런 화병의 양태로 나타나는 "IMF증후군"의 밑바닥을 살펴보면 손상된
우리의 자존심이 자리잡고 있다.

경제대국이니 세계화중심이니 떠들던 우리가 하루아침에 세계를 향해 손을
벌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수치심 모멸감 분노가 화병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화병의 시기가 지나면 불안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불안이라기보다는 공포나 공황에 가깝다.

지난해부터 명예퇴직바람이 불었어도 먼세상의 일이려니 했지만 이제는
태풍으로 바뀌고 있다.

대량실직 연쇄부도 신용공황의 공포가 하루하루 연속되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도 오지 않으며 괜히 잡생각이 나고 집중이 안되고
일의 능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불안의 시기에는 스트레스증상이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불안의 시기가 가면 우울증이 유행할까 걱정된다.

무기력 허탈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다시 일어설 기운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일은 우울증을 예방하는 일이다.

때로는 쓰러질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힘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의 공황상태에서는 누구의 도움도 별소용이 없으며 자신만이 치유할
능력이 있다.

기죽지 않고 희망을 갖고 노력할때 기회는 온다.

어쩌면 지금은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