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결산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환산손이 하루에도 수천억원씩 새로 발생하고 있는데."

포철의 한 재무담당자는 10일 환산손이라는 "손을 써 볼 수 없는 손해"에
난감해했다.

작년말에 비해 절반 가까이 평가절하된 원화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미실현
손익을 그대로 결산에 반영해야 한다는게 너무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포철이 입고 있는 환산손을 보면 그의 불만도 일리가 있다.

포철이 갖고 있는 외화부채는 지난 6월말 현재 26억3천8백만달러.

올들어 이미 1조8천9백억원의 환산손을 입고 있는 것이다.

포철 뿐만 아니다.

한국전력 5조5천억원, 대한항공 4조원, 삼성전자 3조7천억원, SK주식회사
2조5천억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수조원대의 환산손을 안고 있다.

일부는 정말 오랫만에 "적자장부"를 써야하고 더러는 자본잠식까지 당할
판인 것이다.

대외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은 차후 문제다.

이같은 문제는 현행 기업회계기준에 따라 외화부채를 결산기말에 당시
환율로 환산해 장부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기업들은 화폐성 단기자산 및 부채는 매결산기말에 환산해 당기손익에,
장기성의 경우는 당기손익이나 자본조정에 계상해야 한다.

당기손익에 반영한다면 이익규모를 깎아먹고 자본조정에 들어가면 자본금을
갉아먹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도 기준을 올해만이라도 바꿔달라는 업계의
건의를 들어주기는 커녕 "개정한지 1년도 안됐다"며 미적대다 또 실기했다는
사실이다.

모업체 관계자는 "통산부도 자기자본의 3%를 초과하는 환산손은
이연자산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재정경제원이 틀어버렸다"며
"자국 기업의 경영성과를 왜곡시키면서까지 국제수준의 회계기준을 고집하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토했다.

최근 들어서는 IMF(국제통화기금)가 국제수준의 회계기준을 요구하면서
내놓고 개정하기도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이라도 충분히 기업회계기준을 바꿀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억울한
환산손을 입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장기외화자산과 부채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거나 선택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해 자국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일본 등의 경우는 환율변동이 특히 심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외화부채와 관련된 자산을 평가해 평가익을 만들어 부채와 상계하도록
해주고 있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