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준의 2배가 넘는 금리하에서는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금융시장을 조기 개방하고 기업과 은행들이 자기신용으로 해외자금을
이용하게 하면 금리는 5%대로 떨어뜨릴 수 있다"

지난 9월23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의 결론은 이랬다.

이렇게 시작된 금리인하 논쟁은 정부가 들은척도 하지 않아 "유야무야"
됐다.

70여일 전만해도 회장단이 나설 정도로 12%도 지나치게 높은 금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12~13%짜리 돈은 "사치"인 시대가 도래하게 됐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에서 "통화운영은 긴축기조로 전환하고
이 과정에서 현재 연 14~16% 수준인 시장금리가 상승하더라도 시장안정을
위해 용인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IMF는 18~20%, 정부는 25%까지 오르는 것은 막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5%는 고사하고 국제수준에 비해 최고 5배나 되는 "초고금리"부담을 안고
장사를 해야하는 셈이다.

수익성이 어떻게 될 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올 상반기 국내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은 1.4%.

차입금 평균 이자율이 11.3%인 상황에서 올린 실적이다.

금리가 20%를 넘어서면 수익이 전혀 생겨나지 않을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

외국업체와의 경쟁은 생각도 않는 게 속 편하다.

정부와 IMF는 물가가 안정되고 해외저리자금 이용기회가 확대되면 금리는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내년 상반기내내 금리가 "용인"범위까지 치솟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부담을 못이겨 넘어지는 기업이 속출할 게 뻔하고 그에 따라
금융위기는 사라지는게 아니라 확대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부 기업의 경우는 해외차입이 자유화됨에 따라 해외자금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통화량증가 요인이 돼 다른 기업이 쓸 돈을 막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양상도 펼쳐진다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활동은 그래서 앞으로 당분간 "생존 전략"에 집중돼야 한다.

금리가 눈에 띄게 낮아질 때까지 신규투자는 포기하는게 낫다.

25% 이자를 내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은 없기 때문이다.

고금리는 곧 자금확보난을 의미하는 만큼 현금확보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캐시플로(cash flow)가 막히면 흑자상황에서도 곧바로 쓰러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세진 금융조세실장은 "국내에는 유동성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적극적인 해외차입과 해외자본유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부 사업이나 지분을 외국인에게 매각하는 조치도
망설이지 말고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이렇게 벼랑으로 내몬 정부도 한가지 해줄 일이 있다.

"구조조정특별법"을 하루 속히 제정해 한계사업정리 등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한꺼번에 없애주는 것이다.

"개별법 개정으로도 충분하다"는 변명은 이제 접어두고.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