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IMF의 사실상 신탁통치체제로 편입되면서 재정경제원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경원 관계자들도 이번 사태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경식 전 부총리는 물러났지만 고위 행정관료들 역시 책임을 벗을수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금융정책이나 산업정책 관련 행정조직의 고위직 인사들은 이 책임의
범주를 벗어날수 없다는 지적들이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장은 익명을 전제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한보사태 직후
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는데도 재경원은 위기방지를 위한 제대로 된 실무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며 "심지어 외환보유고에 대한 통계사실의 공표에서
조차 정부는 사실을 숨겨 왔었다"고 재경원을 비판했다.

다른 민간연구소의 한연구위원은 "정부가 발밑에서 진행되는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부인으로 일관하면서도 21세기 국과과제같은 정치색 짙은 주제들에
행정력을 낭비해 왔다"고 지적하고 "부총리와 고위 행정가들이 대선을 맞아
정치적인 활동반경을 높이는데 몰두해온 느낌을 지울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IMF와의 협상과정에서조차 행정관료들은
자신들이 추구해 왔던 정책을 끼워 팔기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금융감독기구 통합이나 실명제 골격유지 등은 정부가 IMF의 이름을 빌어
끼워팔았음이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책에서의 무능뿐만 아니라
도덕적 균형감마저 의심받고 있다는 얘기다.

재정경제원 내부에서도 공룡재경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 국장급 관계자는 "사실 민감한 경제적인 현안들을 두고 토론이 전혀
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통합재경원 체제가 경제현실의
파악이나 내부논의 구조의 활성화라는 점에서는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반시민들의 반응은 더욱 격하게 나오고 있다.

"공무원은 철밥그릇이냐 정리해고도 없나"는 반응들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
"민간기업에서 이렇게 실패했다면 해고를 당해도 몇번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권한은 엄청난 것이 공무원들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1년간 경제정책의 전개과정을 보면 이같은 주장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말 구호성 정책의 대표적인 조치인 10% 경쟁력 높이기로
시간을 허비한 것은 물론 M&A제도의 후퇴, 금융개혁법안을 둘러싼 갈등의
양산등 구호가 요란한 정책만을 추구해 왔을 뿐 구체적이고도 시급한
정책들에선 손을 놓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고위 공무원들이 "국가를 경영한다"는 자기도취에 빠져 타이틀이 거창한
대형정책들만 추구했을 뿐 정작 발밑의 시급한 행정업무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