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초비상이 걸렸다.

IMF(국제통화기금)와의 협상 결과 정부가 외국인 주식취득 총한도를
올해안에 종목당 50%까지,내년에는 55%까지 확대키로 하자 기업들은
외국인들의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더욱이 증시침체로 주가가 폭락한데다 원화가치는 크게 떨어져 외국인들이
국내기업을 인수할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좋다는 점이 기업들을 긴장케 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분석에 따르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한도가
50%까지 확대되면 1백억원만으로 인수가 가능한 상장법인이 무려 2백22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백억원이면 현재 환율로 따져 9백만달러에 불과해 당장 외국인들의
M&A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일부 기업은 단일 계열사만이 아니라 모기업의 지분구조마저
취약해 그룹이 통째로 외국인 손에 넘어갈 우려도 크다.

멕시코의 경우 IMF체제의 구조조정기를 거치면서 무려 1천5백여개의
기업들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도 앞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외국인의 지배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에 앞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쌍용그룹이 쌍용제지를 다국적 생활용품업체인 P&G에 넘겼으며 쌍방울도
무주리조트를 가수 마이클 잭슨에게 넘기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기아그룹도 자구노력에 나서면서 계열사인 모스트를 독일 합작선이던
보쉬에 팔아버렸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방법으로 한계사업과 자산을
매각하려하지만 국내에서는 인수할 능력이 있는 회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10대 그룹 가운데도 일부 기업의 경우 자본 참여할 해외
합작선을 찾아나서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적대적 M&A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데다 자금압박도 목까지 차들어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요기업을 팔아버리려는 기업은 부채비율이 4백%가 넘는 곳이라면
대부분 같은 처지라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문제는 기업경영이 괜찮은데도 취약한 지분구조로 M&A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들이다.

경영권 방어에 힘을 소모하다 마침내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그룹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우그룹 비서실 김우일이사는 "지금까지는 경영권 방어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공격적인 경영활동을 벌여왔으나 외국인 투자가 사실상 자유화된
만큼 기업지배권 확보를 위한 다양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미 기업들은 자산매각과 고용조정 한계사업포기 등의 구조조정과 함께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등 M&A 방어전략을 짜고는 있으나 진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가를 올려놓는 것만이 M&A의 적극적인 대응책이겠지만 이 또한 경제
여건상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S그룹 같은 곳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경영권 수호 작업에 나서
"밝힐 수 없는 우호세력"을 확보한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인의 무차별적인 기업사냥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국내기업들에 손발을 묶어 놓은 총액출자한도를 풀어버리는등
제도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