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에 인접한 독일 북부 브레멘.

이 해안도시를 들어서면 1백30만평방m의 거대한 카터미널에 현대 소나타,
기아 스포티지, 쌍용 무쏘 등 낯익은 우리 승용차 수천대가 줄지어 반긴다.

독일은 물론 남쪽으로는 스페인, 북으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로 흩어질
수출품들이다.

지난해 브레멘항구를 통해 유럽에 들어온 국산차는 10만대를 웃돈다.

유럽수출분의 70% 이상이 이곳을 거친 셈이다.

한국차만이 아니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 미국 GM, 말레이시아 프로톤 등 세계에서 연간
1백만대 이상이 이 항구로 들어와 유럽 각지로 팔려나간다.

유럽 최대 카터미널이라고 자랑하는 브레멘 정부관계자들의 설명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실감케해준다.

몇년전만해도 조그만 항구에 불과했던 브레멘이 이처럼 유럽의 중심항구로
급성장한 것은 지난 90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부터였다.

동서진영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유럽은 동구를 포함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자연히 서구와 동구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브레멘은 점차 유럽의 중심항구로
각광받으며 네덜란드 로테르담, 벨기에 앤터워프 등을 맹추격하고 나선
것이다.

한마디로 지정학적 이점이 오늘날의 브레멘을 만드는데 큰몫을 하고 있다
는게 이곳 경제개발공사(BBI) 게르하트 로엑 아시아담당 이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그가 펼쳐 보이는 거대한 유럽지도를 보노라면 그의 지적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브레멘항구를 중심으로 동원을 그리면 서울~부산거리인 5백50km이내 독일
전역은 물론 베네룩스 3국과 체코 및 폴란드 등 동구일부가 들어온다.

이를 1천km로 넓히면 프랑스 스위스 스웨덴 동구 등 사실상 전유럽이 이
영향권에 포함된다.

브레멘정부는 지정학적 이점을 십분 활용, 카터미널 인근에 2백40만평방m의
거대한 컨테이너터미널도 만들었다.

접안길이가 3km에 이르는 컨테이너 터미널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4만5천
개를 일시에 처리할 수 있다.

인근 로테르담 등 보다는 총규모가 작은 편이나 단일 터미널로는 유럽
최대이며 지금도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브레멘의 이런 급성장에는 한때 패전국의 상징이었던 미군주둔 기지의
존재도 한몫을 하고 있다.

냉전시대의 종료와 함께 이곳에 주둔해온 미군병력이 사실상 철수하자
브레멘정부는 미군이 깔아놓은 철도 통신 등 첨단설비를 인수, "유러서브"란
공업단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이 공단은 북해 철로 도로 내수로 항공 등 모든 수송노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돼있어 "물류부담 제로지역"이라는게 젠스 파젤 컨테이너 터미널담당자의
주장이다.

현재 유러서브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폴크스바겐 등이 조립공장을 갖고
있으며 미국 켈로그 등 식품업체들도 이곳에서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진출에 대한 기대도 상당하다.

브레멘이 갖고 있는 또다른 장점은 기초 및 응용과학이 상당히 발전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20년부터 이 지역은 항공기를 생산, 현재 유럽 다국적 항공 컨소
시엄인 에어버스의 독일 생산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주요 연구소인 프라운호퍼 인스티튜트의 분소도 여기에 있다.

또 자동차 섬유 수산 등 각분야의 전문 연구기관이 1백20개에 이른다.

브레멘대학의 호스트 A 딜 부총장은 "자동차에어백 로지스틱스 등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은 언제든지 제공해줄 것"이라며 산.학협력에 적극성을
보였다.

개방경제의 상징이었던 중세유럽 한자동맹도시중 하나인 브레멘.

독일 최대 조선소인 브레머 불칸의 도산으로 경제난에 부딪치기도 했던
이 도시는 이제 세계화란 길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기위한 시동을 강하게
걸고 있는 것이다.

[ 브레멘 = 김영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