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의 환율정책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가파른 환율상승은 무조건 억제한다는 전제아래 각종 행정조치
를 들고 나왔으며 강력한 시장개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10일부터는 환투기에 의한 환율급등락은 시장안정차원에서 방지하되
수요와 공급에 의한 자연스러운 환율변동은 용인한다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같은 태도변화는 지난 9일밤 열린 강경식 부총리 이경식 한은총재 김인호
청와대경제수석의 모임에서 어느정도 합의를 본 상태에서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외환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당국이 이처럼 환율정책에서 유연한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최근의
환율상승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데는 한계가 있는데다 엔-달러추이 등
국제금융시장의 변화를 어느 정도 포용하는게 현명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외환당국은 현재 환율수준이 우리경제수준보다 저평가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상수지적자규모의 축소와 물가안정기미 등 거시경제여건만 볼때 환율이
달러당 1천원에 육박하는건 비정상적이며 달러당 9백70원대가 적정수준
이라는 입장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환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것은 <>금융기관 신인도저하에 따른
해외차입 중단 <>외국인주식투자자들의 국내이탈 <>동남아 통화위기의 파급
및 시장참여자들의 불안감이 가미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구체적 경제여건에 관계없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환율이 적정수준을
뛰어넘어 비정상적으로 상승,거품이 야기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외환당국은 이같은 환율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그동한 각종 실수요증명제
실시등 각종 행정조치를 내놓았고 강력한 시장개입을 실시했다.

지난 한주동안에는 무려 20억달러가량을 환율안정을 위해 쏟아붓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일주일여만에 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달러당 9백70원대에서 안정될 조짐을 보이던 환율은 곧장 9백80원을
넘어섰다.

외환당국은 이에따라 지난9일 마련한 금융시장안정대책에서 다시 강도높은
행정규제책을 준비했으나 그 실효성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의문이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릴때마다 달러화와 파운드화만이 강세를 유지하는 것도
외환당국의 태도변화를 초래했다.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말 원-달러환율을 9백60원대에서 유지하고자
했을때 엔-달러환율은 1백20엔이었다"며 "엔-달러환율이 지난 8일
1백24.26엔까지 오른 만큼 1엔을 8원으로 계산할때 원-달러환율이 지난달말
보다 30원가량 상승하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고 말해 국제금융시장의 변화를
충분히 감안했음을 시사했다.

외환당국은 단기적인 처방대신 종금사및 은행의 부실여신해소 등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외환시장안정을 위해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성업공사등을 통해 종금사와 은행의 부실여신을 털어내면 이들 기관의
신인도가 회복되고 그러면 해외차입여건도 양호해져 외화가수요심리도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은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외환관리규정개정을
통한 수요억제책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종금사와 은행의 구조조정 등을 통한
환율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며 "일시적으로 환율이 달러당 1천원을 넘어서는
것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외환당국이 무작적 환율상승을 용인하자는 입장은 아니다.

단기적인 환율상승의 폐해가 만만치 않은 만큼 완충단계를 설정해야
한다는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한은은 현재 이 수준을 달러당 1천원으로 설정해 놓고 있으며 앞으로
상황을 봐서 더 후퇴할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영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