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중소기업 이야기] (32) '판도라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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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는 제우스가 준 상자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 못견딘다.
남편이 이를 열지 못하게 했음에도 판도라는 박스의 뚜껑을 열어본다.
그순간 상자속에 들어있던 재앙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다.
깜짝 놀란 판도라는 후다닥 두껑을 닫아버린다.
그 바람에 안쪽에 들어있던 "희망"이 미쳐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버린다.
요즘 골판지상자가 바로 이 판도라상자와 비슷한 처지에 몰리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중소기업고유업종으로 묶여있는 골판지상자의 뚜껑을 한시바삐 열라는
요구가 높아서다.
고유업종해제를 요구하는 측은 국산골판지의 품질이 낮아 골치라고
주장한다.
"뉴욕항에 도착한 수입물품들을 보십시오.
골판지귀퉁이가 튿어진건 한국제품뿐입니다"라고 얘기한다.
상자의 강도가 약한데다 각각의 품목에 맞게 설계돼 있지 않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골판지상자를 만드는 측은 전혀 생각이 다르다.
골판지는 중소기업들이 생산하기에 적합하고 지금은 품질도 선진국수준
이라고 맞선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지난해초 이후 고유업종 참여에 대한 고발및 경고중
골판지상자 분야가 가장 많았다.
제일산업이 경북 칠곡공장에 7대의 골판지상자 생산설비를 설치하다 경고
조치를 받았고 주식회사 장천은 골판지상자를 신고하지 않고 생산설비를
들여놓았다가 4백만원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영진특수기기도 비슷한 상황으로 6백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삼원판지 부평판지등은 고발당했으나 불기소처분됐다.
상황이 이쯤 되자 골판지생산 증설을 원하는 측은 더이상 규제할 것이
아니라 뚜껑을 완전히 열어제치라고 요구한다.
사실 이들의 요구가 강력한 것도 이해는 간다.
이런 중소기업고유업종 지정제도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밖에 없어서다.
그렇다면 왜 우리만 이런 제도를 만들었을까.
이는 70년대 중화학육성책을 펴면서 자본이 대기업에 집중된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중소기업을 규모에 알맞는 업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80년대엔 정부가 고유업종을 늘리는 걸 자랑으로 삼았다.
그러다보니 지팡이제조업까지 중소기업고유업종으로 넣어 품목수를
늘리기에 빠빴다.
성남 모란시장에 가서나 겨우 발견할 수 있는 나무지팡이까지 고유업종으로
지정한 것은 너무하다며 90년대 들어선 정부가 이를 해지하는데 앞장섰다.
결국 지난 89년 2백37개업종에 이르던 고유업종이 대거 풀려 지금은
88개 업종으로 명맥만 남게 됐다.
며칠전 천안백석공단에서 대기업그룹의 임원을 만났다.
그는 왜 우리나라만 유독 고유업종을 계속 고집하느냐고 반박했다.
일본의 미쓰비시는 세계적인 그룹이면서도 아직 지우개를 만들더라고
덧붙였다.
지우개업종은 아직 국내에선 고유업종.
하지만 오죽하면 지우개까지 고유업종으로 지정했을까.
그러나 이제 유능한 중소기업이라면 더이상 고유업종에 연연해하지 말자.
중소기업들이 영위하는 업종중엔 고유업종으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대기업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업종들이 많아졌다.
절삭유 윤활유 금형 볼트 너트등 여러업종은 고유업종이 아닌데도
대기업에서 참여했다가 스스로 두손을 들고 물러나야 했다.
이런 업종이야말로 진짜 중소기업고유업종이 아닐까.
정말 도전하는 중소기업이라면 대기업참여를 뭐 그렇게 겁내는가.
판도라박스를 열테면 열어보라고 자신있게 말하자.
그래야 뚜껑을 열어도 연쇄부도란 재앙을 당하지 않고 시련뒤에 커다란
"희망"을 거머쥘 것이 아닌가.
< 중소기업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7일자).
궁금해 못견딘다.
남편이 이를 열지 못하게 했음에도 판도라는 박스의 뚜껑을 열어본다.
그순간 상자속에 들어있던 재앙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다.
깜짝 놀란 판도라는 후다닥 두껑을 닫아버린다.
그 바람에 안쪽에 들어있던 "희망"이 미쳐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버린다.
요즘 골판지상자가 바로 이 판도라상자와 비슷한 처지에 몰리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중소기업고유업종으로 묶여있는 골판지상자의 뚜껑을 한시바삐 열라는
요구가 높아서다.
고유업종해제를 요구하는 측은 국산골판지의 품질이 낮아 골치라고
주장한다.
"뉴욕항에 도착한 수입물품들을 보십시오.
골판지귀퉁이가 튿어진건 한국제품뿐입니다"라고 얘기한다.
상자의 강도가 약한데다 각각의 품목에 맞게 설계돼 있지 않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골판지상자를 만드는 측은 전혀 생각이 다르다.
골판지는 중소기업들이 생산하기에 적합하고 지금은 품질도 선진국수준
이라고 맞선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지난해초 이후 고유업종 참여에 대한 고발및 경고중
골판지상자 분야가 가장 많았다.
제일산업이 경북 칠곡공장에 7대의 골판지상자 생산설비를 설치하다 경고
조치를 받았고 주식회사 장천은 골판지상자를 신고하지 않고 생산설비를
들여놓았다가 4백만원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영진특수기기도 비슷한 상황으로 6백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삼원판지 부평판지등은 고발당했으나 불기소처분됐다.
상황이 이쯤 되자 골판지생산 증설을 원하는 측은 더이상 규제할 것이
아니라 뚜껑을 완전히 열어제치라고 요구한다.
사실 이들의 요구가 강력한 것도 이해는 간다.
이런 중소기업고유업종 지정제도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밖에 없어서다.
그렇다면 왜 우리만 이런 제도를 만들었을까.
이는 70년대 중화학육성책을 펴면서 자본이 대기업에 집중된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중소기업을 규모에 알맞는 업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80년대엔 정부가 고유업종을 늘리는 걸 자랑으로 삼았다.
그러다보니 지팡이제조업까지 중소기업고유업종으로 넣어 품목수를
늘리기에 빠빴다.
성남 모란시장에 가서나 겨우 발견할 수 있는 나무지팡이까지 고유업종으로
지정한 것은 너무하다며 90년대 들어선 정부가 이를 해지하는데 앞장섰다.
결국 지난 89년 2백37개업종에 이르던 고유업종이 대거 풀려 지금은
88개 업종으로 명맥만 남게 됐다.
며칠전 천안백석공단에서 대기업그룹의 임원을 만났다.
그는 왜 우리나라만 유독 고유업종을 계속 고집하느냐고 반박했다.
일본의 미쓰비시는 세계적인 그룹이면서도 아직 지우개를 만들더라고
덧붙였다.
지우개업종은 아직 국내에선 고유업종.
하지만 오죽하면 지우개까지 고유업종으로 지정했을까.
그러나 이제 유능한 중소기업이라면 더이상 고유업종에 연연해하지 말자.
중소기업들이 영위하는 업종중엔 고유업종으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대기업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업종들이 많아졌다.
절삭유 윤활유 금형 볼트 너트등 여러업종은 고유업종이 아닌데도
대기업에서 참여했다가 스스로 두손을 들고 물러나야 했다.
이런 업종이야말로 진짜 중소기업고유업종이 아닐까.
정말 도전하는 중소기업이라면 대기업참여를 뭐 그렇게 겁내는가.
판도라박스를 열테면 열어보라고 자신있게 말하자.
그래야 뚜껑을 열어도 연쇄부도란 재앙을 당하지 않고 시련뒤에 커다란
"희망"을 거머쥘 것이 아닌가.
< 중소기업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