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연이틀 급락세를 보이며 연중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기아사태가 장기화된데다 수급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신한국당의 김대중
국민회의총재 비자금 폭로사태가 증시에도 다시금 일파만파를 일으키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이같은 장내외 악재가 투자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향후 장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며 일각에선 종합주가지수
600선 붕괴마저 점치고 있다.

과연 이번 비자금사태의 주가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우선 이번 비자금사태와 지난 95년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파문이 불거졌을
때와의 증시주변여건을 살펴보면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대우증권의 정동배 투자정보부장은 "당시엔 실물경기가 냉각되는 시점이었던
반면 최근엔 경기가 바닥국면을 보이는 상황이어서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엔 3분기의 경제성장률이 9.8%였던 것이 4분기엔 6.7%로 떨어지고
설비투자증가율도 22%에서 1%대로 급랭하던 시기였다.

주가도 노태우 비자금사건이 터진 95년 10월19일(1000.22) 이후 보름동안
횡보국면을 보이다 기업인들이 무더기로 소환된 11월7일부터 급락세로
돌아선뒤 노 전대통령이 구속되던 11월16일엔 933까지 곤두박질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정부장은 "단기적으로는 경기여건보다도 기업들의 투자심리 위축이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주가의 추가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이번 비자금사태가 기존의 기아사태 장기화와 맞물려 악재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LG증권의 이성훈이사는 "비자금사건 자체보다도 기아사태의 장기화가 실물
경기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최근들어 "악재는 모두 노출됐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팽배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기아사태가 몰고올 악성 파장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대신증권의 최갑수 투자정보팀장도 "최근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져 반등이
기대되던 시점에 비자금사건이 추가돼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일단은 종합주가지수 600선 붕괴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외악재가 가세하면서 실세금리도 오름세를 더해가고 원화환율도 여전히
불안한데다 고객예탁금이 2조5천억원 밑으로 떨어지는 등 수급여건마저
열악한 상황이다.

외국인과 기관들의 매물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시장분석가들은 일단 종합주가지수 600선이 무너지면 580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점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단기급락에 따른 반발매수를 겨냥하는 투자자들은 정부의 증시안정책이
투자심리를 호전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증권전문가들은 추가하락에 대비해 보수적인 매매전략에 임하되
투매는 자제해야 할 것으로 조언했다.

< 손희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9일자).